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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파일] 3. 서포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프로축구 올시즌 개막전 수퍼컵 대회가 열린 지난 20일 수원 공설운동장. 스탠드 왼쪽에는 1천5백여명의 수원 삼성 서포터 (Supporters) 들이 힘찬 합창과 함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들은 선수들과 똑같은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탐탐이' (어깨에 둘러메는 작은북) 의 박자에 맞춰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골이 터질 때마다 종이 꽃가루가 흩날렸고 두루마리 화장지로 만든 휴지폭탄이 터졌다.

맞은편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1백여명의 안양 LG 서포터들은 '깜짝 퍼포먼스' 로 맞섰다. '서정원' 이라고 쓰인 플래카드에 ×표를 그린 것이다. 친정팀 안양을 떠나 수원으로 이적한 서에 대한 무언의 항의였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된 이후 이들은 목청껏 노래 부르고 커다란 깃발을 흔들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이제는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반갑게 찾아볼 수 있는 서포터. 수동적인 '관중' 도 아니고 치어리더의 주문에 맞춰 박수나 쳐대는 '들러리' 임을 거부하는, '자유 정신' 이 만들어낸 이 시대의 또다른 청년문화다.

프로야구나 농구에도 특정팀에 대한 응원그룹이 있지만 규모나 조직력 면에서 '서포터' 라 이름 붙이기엔 아직은 이르다.

국내에 서포터가 나타난 것은 95년 프로축구가 지역 연고제를 정착시킨 이후부터다. '내 팀' 을 쫓아 응원다니던 젊은이들이 유럽.일본의 서포터들을 주목한 것이다.

95년 12월 수원 삼성을 효시로 안양.부천 등에서 서포터가 속속 생겨났다.

이들은 PC통신을 통해 급속도로 세를 불려나갔고 2002년 월드컵 유치운동과 98프랑스월드컵 열기를 계기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

이들은 철저히 자발성을 앞세워 활동한다. 응원용품 구입비나 원정경비는 자신들이 부담한다. 간혹 구단에서 원정경기가 있을 때면 버스를 빌려주거나 유니폼.머플러를 싼값에 제공하는 정도다.

이제 서포터는 한국 축구를 움직이는 무시못할 압력단체로 커졌다. 지난해 서포터들의 도움으로 프로축구 올스타전에 6만관중을 모은 프로연맹은 서포터 대표와의 정례모임을 약속, 지난 2월 19일 첫 만남을 가졌다.

경기가 끝난 뒤 스탠드를 청소하는 서포터들의 모습은 지난 프랑스월드컵 당시 해외 언론을 탔다.

서포터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어느 틈에 '한국축구를 일으킬 희망' 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양 서포터 회장 송흥종 (28) 씨의 한마디는 음미할 만하다. "바라는 건 10년쯤 뒤에 애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좋아하는 팀 경기를 구경가는 겁니다. "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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