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원자로 최초의 해체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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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년퇴직' 하는 원자로에 대한 해체 (解體) 설계 최종안이 나왔다. 국내 최초의 원자로로서 연구에 쓰이던 '트리가마크Ⅱ.Ⅲ' 에 대한 일종의 안락사 (安樂死) 방안이 마련된 것. 서울 공릉동 원자력병원 인근에 자리잡은 트리가마크 Ⅱ.Ⅲ은 각각 지난 62, 72년 본격 가동됐었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최근 원격조종 로봇.막 분리.자연증발.제염 (除鹽) 기술 등을 동원해 올부터 2002년까지 이 원자로를 해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자로 해체 작업으로는 국내 첫 시도일 뿐 아니라 향후 고리 (古里) 등 상업용 원전 해체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원자로는 일반 기계나 건축물과 달리 핵반응이라는 특수 경험을 갖고 있어 구석 구석까지 자연과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에 오염돼 있는 것이 특징. 따라서 해체비용만도 1백억원을 훌쩍 넘는다.

해체팀을 이끌고 있는 원자력연구소 정기정 (鄭基正) 박사는 "말이 해체지 마구 부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전제로 한 연구의 일환인 셈" 이라고 말했다.

해체팀이 야심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원격조종 로봇을 이용하는 것. 가정용 진공청소기만한 이 로봇은 핫셀 (방사성물질 조작장치) 구석구석을 누비며 오염도를 체크하고 때로는 제염 작업 등에도 이용된다.

이외에 자연증발.막 분리 기술 등도 오염 방사능 제거에 이용된다. 鄭박사는 "해체 경험이 풍부한 영국회사로부터 자문을 받기로 했지만 가능한 한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많이 사용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국내 상용 원자로의 경우 예상수명을 30년으로 잡을 때 2008년 고리1호기를 필두로 2~5년 간격으로 계속 해체가 잇따를 전망이다.

한편 해체설계안은 아직까지 트리가마크Ⅱ를 '원자력기념관' 으로 만들지 여부는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 정부 원자력이용개발전문위원회는 이 원자로의 역사적 가치를 살려 영구 기념관화 한다는 결정을 이미 내린 바 있다.

트리가마크는 그간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부터 원자력 기초기술 개발과 원자력 인력양성까지 국내 원자력 실험의 산증인과 같은 존재였다. 또 제3공화국 때는 핵폭탄 연구와 관련 미국으로부터 의심의 눈길을 받기도 했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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