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한국인의 영어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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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성서 '창세기' 에 나오는 바벨탑 얘기는 인간의 언어가 여러가지인 이유를 설명한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이름을 세상에 떨치고자 했다.

하느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일을 막았다.

탑은 완성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온 세상으로 흩어졌다.

현재 전세계에는 약 6천개 언어가 존재한다.

이중 가장 많은 인구가 모국어 또는 공용어로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로 12억명이 사용한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영어로 7억5천만명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숫자가 외국어로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세가지를 모두 고려하면 영어가 중국어를 훨씬 앞선다.

영어는 현대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전세계 우편물의 4분의3이 영어로 씌어 있고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의 8할이 영어다.

인터넷 메일은 9할 이상이 영어로 교신이 이뤄진다.

국제기구의 85%는 업무용 언어로 영어를 사용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ECB) 의 공용어는 독일어도 프랑스어도 아닌 영어다.

영어가 세계어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다.

20세기 들어 미국이 슈퍼파워로 부상하면서 영어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제 영어는 세계인의 공통된 의사소통 수단이 됐다.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쇠퇴한다 해도 영어의 위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영어가 이처럼 막강해짐에 따라 영어교육과 관련된 '영어산업' 도 호황이다.

영국은 매년 우리돈으로 2조6천억원을 영어산업에서 벌어들인다.

뿐만 아니라 영어를 통한 계약.상담 등으로 큰 이익을 보고 있다.

현재 세계 영어산업 시장은 영국.미국.캐나다.호주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영어교육 열기는 세계적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영어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하지만 한국인의 영어실력은 신통치 않다.

지난 96년 한국인 TOEIC 평균점수는 9백90점 만점에 4백61점으로 조사대상 11개국중 10위였다.

특히 회화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듣기에선 2백34점으로 꼴찌였다.

길을 안내해주는 말을 겨우 이해하는 수준이다.

한국인의 영어실력이 이처럼 형편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영어교육 때문이다.

읽기.문법 위주의 낡은 영어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영어에 관한 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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