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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책임의 세계에 발 들여놓은 정운찬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유명 지식인의 정치참여에 대해 신념과 책임 논쟁이 뒤따르곤 한다. ‘지식인이 왜 자기 소신과 다른 정부에 들어가는가’ 하는 건 신념에 관한 이슈다.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의 시대가 결핍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전체주의 시대라면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저항하는것이 정답일 것이다. 반면 분열과 쇠락의 시대라면 애국적 정열이 요구된다.

데이비드 거겐(67)은 미국의 유명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다. ‘US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의 편집인을 지냈고 지금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교수이자 이 대학 정치리더십 센터의 소장이다. CNN에 자주 출연해 정치평론을 한다. 보수색 짙은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인데 닉슨·포드·레이건 대통령 시대 백악관 보좌관을 지낸 핵심 공화당원이다. 놀랍게도 그는 1993년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에 공보보좌관으로 참여한다. 당시 클린턴은 자기 정책을 공화당에 진심으로 전달할 인맥이 없었고, 적대적인 워싱턴 언론에 밀려 완전 녹아웃 상태였다고 한다.

좌우에 클린턴 대통령과 고어 부통령이 서 있는 백악관 로즈가든 기자회견에서 거겐은 이렇게 말했다.

“애국심은 반드시 당파주의에 우선해야 합니다. 현재 국회의사당에 난무하고 있는 난폭한 당파주의를, 대부분의 언론을 침식하고 있는 냉소주의를 넘어서야 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조국의 요청을 더 이상 한순간도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습니다.”

거겐은 뒤에 “남부 토박이 출신으로서, 나는 국가의 부름에 응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자랐다. 클린턴의 부름은 더 특별했다.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곤란에 빠진 미합중국 대통령의 직접적인 부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

정운찬 총리후보 지명자의 이명박 정부 참여는 그 자체로서 문제 삼을 게 없다. 지금이 분열과 정체의 시대이고, 통합이 결핍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시할 건 책임에 관한 이슈다. 정 후보자는 그동안 교수로서 주로 자유와 신념의 영역에서 생활해 왔다. 야구광이며 야구평론도 했다. 정치나 경제현상에 대해서도 평론가처럼 말을 많이 했다. 이제 총리 후보자가 됐다는 건 그가 의무와 책임의 영역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평론가가 아니라 실천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개인과 국가가 부딪칠 땐 국가를 선택해야 하고, 신념과 책임이 충돌할 땐 책임을 따라야 하는 게 공직자의 세계다.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면 출사를 해선 안 된다.

정 후보자는 2007년 봄, 대선 도전과 관련해 “생각은 오랫동안 깊게 하고 행동은 빠르고 과감하게 하겠다” “나는 decisive한(결단력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 그의 생활 자세는 우유부단하다든가 스타일리스트라든가 실천력이 떨어진다든가 하는 지적도 있다. 정 후보자에게 이제 필요한 건 국민이 의지하고 싶어지는 책임감 투철한 공인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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