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의 역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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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15면

요즘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분)이란 인물이 화제다. 극중에선 아름다움을 무기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점을 치며 제사를 관장하고 환자도 고치는 원시 샤먼, 즉 여사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미실이 많은 남자와 관계를 맺었던 것도 성 개방에 의한 방종이 아니라 제례와 관계가 있었을 수도 있다. 원시인은 성관계 이후 새 생명이 탄생하는 자연의 신비에 대해 대단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어 성행위 자체를 신성한 의식이라고도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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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은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흔히 하지만, 고대의 매춘은 근대 이후의 상품화된 매춘과는 많이 달랐다. 페니키아의 아슈타르테, 바빌론의 이슈타르 여신의 신전에 살던 ‘성스러운 매춘부(Sacred prostitute)’는 신과의 신성한 결혼(Hierosgamos)을 위한 일종의 중개자였다. 구약에도 다말이나 라합처럼 신탁을 전하는 매춘부가 등장한다. 그리스에도 기생이나 게이샤처럼 예술에 종사하며 나름대로 존경받는 헤타에라라는 매춘 계층이 있어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보호를 받는다고 믿었다.

중국 관세음보살 전설의 한 아형(subtype)에는 관세음보살이 외딴 어촌 마을에 매춘부로 변해 나타나 자신과 성관계를 하기 전에 불경을 외워 오라고 주문하는 내용이 나온다. 온 마을의 어부들이 여인의 아름다움에 홀려 불교에 귀의하게 되고, 보살의 현신과 자리를 한 후 성욕도 없어져 불성을 되찾게 된다. 인도의 데바다시(devadasi), 네팔의 듀키(Deuki)도 신전을 지키는 여사제였는데, 현대에는 그 뜻이 변질돼 사춘기 이전의 어린 여성들을 여신으로 삼고 경배하다, 초경이 시작되면 내쫓아 싸구려 매춘부로 생활하게 만든다. 고대의 매춘과 현대 매춘의 다른 점일까.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납치와 인신매매로 끌려가 비참하게 매매춘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엔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하면서 돈을 버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장난처럼 원조교제를 시작했다가 본격적으로 성매매에 종사하는, 겁도 죄의식도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교제하면 돈을 주겠다는 말에 수십 명의 여대생이 자발적으로 옷을 벗었다는 가짜 재미교포 사건에, 제자에게 자신의 성매매 비용까지 지불하게 했다는 교수 소식도 들린다. 해외에서 원정 성매매를 하는 한국 여성 소식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나라가 시원찮으면 여성과 아이들이 수출되어 몸과 마음을 농락당하는 일은 무수히 반복되어 왔다. 예컨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세계 각국에 퍼져 나간 게이샤들의 송금으로 일본이 발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한국에도 1970~80년대엔 자신의 동생들을 공부시키느라 희생하는 성스러운 매춘부가 있었지만, 21세기의 매춘은 욕망의 배출과 물신숭배가 결합된 흉물스러운 괴물 쪽에 가깝다.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저예산 영화인 ‘고갈’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나쁜 남자’ 등은 모두 매춘을 다루고는 있지만, 성(性)과 성(聖)의 상징 코드를 연결시키는 직관의 힘이 담겨 있다. 아무 설명이나 감정 없이 섹스를 주고받는 요즘 세상은, 어쩌면 하드코어 포르노보다 더 포르노 같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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