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농협이 거듭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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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협동조합이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분야별 조합간의 기능 중복, 비대한 중앙조직과 회장에의 권한집중, 경제사업보다 신용사업에 치우친 경영, 영세한 일선조합 및 회원조합간의 과다경쟁 등의 문제는 지난 정부때부터 거론돼 지난해 협동조합개혁위원회에서는 방향까지 제시된 사안이었다.

이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서로가 개혁대상이라는 풍조까지 만연되었으니 정부가 나서는 게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제 온 국민이 지켜보는 마당에 더 이상 개인적 이기주의나 조직적 이해관계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협동조합 정신을 살리고 효율성과 투명성에 입각한 질적 성장을 추구하면서 농업인의 진정한 봉사조직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 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먼저 회원조합은 경제사업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일선 조합을 적정한 경제 단위로 통합하고, 또한 규모만 키운다고 효율성이 높아지지는 않기 때문에 내부적인 경영혁신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보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유통.경제사업에 대한 정책자금을 늘리고 상호금융업무를 보강하여 명실공히 종합 농협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회원조합의 규모가 커지면 조합원과의 유대관계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고려하여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앙회는 회원조합 지원에 충실한 조직으로 개편돼야 한다.

이를 위해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완전 분리하여 책임경영 체제를 확립하고 조직과 기능을 대폭 축소해 운영의 효율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

특히 농.축.인삼협의 통합은 다시 거대 조직화에 따른 비능률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경제사업을 회원조합으로 이관하되 불가피한 중앙회의 경제사업은 자회사 또는 독립사업부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경제사업과 신용사업간의 자금연계를 위한 효율적인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협동조합이 누릴 수 있는 자금의 내부거래로 인한 편익이 줄어들 경우 경제사업은 많은 제약에 부닥칠 수 있다는 점에서 별도의 농업은행 설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신용사업의 범위 제약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금융산업 발전에 따라 시중은행은 업무영역을 넓히는 추세인데 협동조합의 내부적 문제 때문에 사업을 한정하는 것은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협동조합이 대단위로 통합되면 조합장이나 중앙회장은 간선제로 선출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선거 부조리는 차치하더라도 분야별.지역별 이기주의로 인한 선심성 사업과 이에 따른 경영 부실화가 더욱 우려되는 것이다.

그러나 간선제가 조합 운영의 자율성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선 조합장의 권한은 강화하되 책임도 함께 지도록 하고, 중앙회장은 명예직으로 농정활동에 전념하면서 사업관리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제 장년기에 들어선 농.축협은 보다 성숙된 면모를 갖춰야 한다.

늦게나마 정부의 손을 빌려 개혁작업에 착수하는 협동조합이 농업인을 위한 농업인의 조직으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보내야 할 때다.

김정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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