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일본 <5> 성장에서 분배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도쿄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이시카와 도모미(石川朋美)는 8·30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두 자녀가 있는 그는 선거 전 자민·민주 양당의 육아지원 정책을 비교했다. 현재 두 자녀 앞으로 나오는 월 육아지원비용은 1만5000엔. 자민당은 유치원교육 무상화를 선언했지만 시행시기는 작은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3년 뒤다. 반면 민주당은 중학교 졸업 때까지 1인당 월 2만6000엔의 육아수당 지급에다 공립고교는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어림잡아도 자민당 지원금액의 5배다.

일본 국민의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는 높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시장원리주의는 실업을 양산하고 생활격차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때마침 불어 닥친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일본 국민을 궁핍하게 만들었다. 후생노동성이 5월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7.2%가 “생활이 힘들다”고 답했다. 교도(共同)통신이 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하토야마 정권 출범에 거는 최우선 과제로 경기·고용대책(40.2%·중복응답)을 꼽았다. 다음은 세금낭비 방지(39.2%)와 연금제도 개혁(35.2%)이었다. ‘안심 사회’의 실현 여부가 민주당 정권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인 것이다.

민주당의 캐치프레이즈 역시 ‘국민생활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정권’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정부’였다. 자민당이 추진했던 ‘성장 지향’에서 ‘생활안정’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3일 민주당의 새 간사장이 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 전 대표대행은 선거 기간 내내 “국민생활을 무시한 자민당에 투표하는 사람은 정치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며 “민주당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지역과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당 정권은 소득수준을 불문하고 생활지원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육아수당 월 2만6000엔과 고교교육 무상화 외에도 사립고교생을 둔 세대에는 연 12만 엔(저소득층에는 연 24만엔)을 지원한다. 또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 55만 엔을 주기도 한다. 재정컨설턴트인 우지이에 요시미(氏家祥美)는 “민주당의 육아지원 정책은 그간 정부의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던 상위 10%의 고소득층을 아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조조정 등으로 부담이 늘어난 반면 정부의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던 고소득층 가정도 민주당 정권을 지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고속도로 통행료를 없애고 농어민 소득보장제도를 마련해 직접 현찰을 지급하게 된다.

문제는 돈이다. 일본은 누적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80%(860조 엔)에 달할 정도로 나라 곳간이 텅 비어 있다. 그래서 민주당이 2013년까지 16조8000억 엔(226조원)이 들어가는 복지정책을 계획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쓸데없는 예산 삭감, 불필요한 공공사업 중지, 특별회계 잉여금·인건비 절감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92조1300억 엔으로 책정된 내년도 예산을 새로 짜는 한편 이 과정에서 각종 공공사업을 중단·축소하고 공무원 임금도 삭감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견해는 회의적이다. 골드먼삭스는 보고서에서 “(민주당의 정책 기조에 따르면) 일본의 재정 불균형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해소하려면 국채 발행과 증세 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정책에는 산업의 효율을 높이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미네 다카오(小峰隆夫) 호세(法政)대 교수는 “육아수당과 고속도로 무료화 등이 소비를 늘릴 수는 있겠지만 경제 자체의 파이를 늘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제조업 등의 생산성을 높여 수출을 확대하는 등의 성장전략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