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은행장 줄징계 … 금융계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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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경영진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무더기 징계가 만만찮은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3일과 4일 이틀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하고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등 전·현직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징계를 결정했다. 제재심의위의 결정은 이르면 9일 열리는 금융위원회 회의에서 확정된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회사는 수장이 중징계 결정을 받은 KB금융지주다. 일단 황 회장은 금융위의 제재 결정 이후 재심청구나 행정소송으로 맞설 계획이다. 또 이번 징계가 KB금융지주의 경영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대표이사 회장으로서의 경영활동은 정상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 국민은행 등 9개 계열사를 거느린 KB금융지주의 초대 수장으로 취임한 그는 5년 내에 회사를 아시아 10위, 세계 50위의 금융그룹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금융위기로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그는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종잣돈을 마련했다. 그는 회장 취임 후 증권사나 생명보험사 인수합병(M&A)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번 징계로 그런 작업들이 당분간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고 금융권은 보고 있다.

우리은행도 KB금융지주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황 회장의 후임 행장이었던 박해춘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과 이종휘 현 행장이 파생상품 투자의 사후 관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제재심위위는 ‘주의적 경고’를 결정했다.

또 우리은행은 한동안 파생상품 거래를 금지당하는 일부 영업정지 조치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감독 규정상 최근 3년 이내에 3번 이상 기관경고를 받으면 일부 영업정지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2월 삼성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금융실명제법 위반과 자금세탁 혐의 거래 미보고로, 지난 6월에는 파워인컴펀드 부실 판매로 각각 기관경고를 받았다.

징계 대상 금융사들만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금감원도 감독 책임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감원은 ‘경영판단에 대한 사후 문책은 부당하다’는 비판 여론이 일자, ‘황 회장에 대한 징계는 위법행위에 대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황 회장이 중징계를 받아야 할 만한 행위를 했다면, 왜 그가 은행장으로 재직할 때는 적발하지 못한 채 손실을 키우게 놔뒀느냐에 대해선 금감원도 답이 궁하다.

이 밖에 국민은행과 리딩뱅크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는 신한은행도 후폭풍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신한은행장으로 재임할 때 강원지역 지점에서 발생한 직원의 횡령 사건과 관련해 주의적 경고를 받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당히 긴 기간 동안 횡령이 진행됐는데도 은행 측이 전혀 감지하지 못해 감독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은행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이르면 다음 주 지난해 4분기 우리은행이 경영이행약정(MOU)을 달성하지 못한 데 대한 징계를 확정할 예정이다. 예보도 손실의 책임을 황 회장에게 넘기고 있는 만큼 중징계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 예보는 또 우리은행이 황 회장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내도록 요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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