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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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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러나 비판 여론을 한 꺼풀 벗기고 보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은 포린폴리시, 그 기사를 그대로 실은 일본판 뉴스위크와 새로 가세한 WP는 한집안 식구다. 뉴스위크는 1961년, 포린폴리시는 지난해 WP의 계열사가 됐다. 일파만파 퍼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 비판을 주도하고 있는 건 소수란 얘기다.

더욱이 WP 계열사의 보도는 어째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일본판 뉴스위크는 공교롭게도 반 총장이 일본을 방문하기 직전에 포린폴리시 칼럼을 번역해 실었다. WP가 반 총장을 비판하며 노르웨이 율 대사의 말을 비중있게 인용한 것도 균형 감각과는 거리가 멀다. 율 대사는 최근 유엔 사무차장보 인선에서 물 먹었다. 후보 추천권을 가진 반 총장에게 감정을 품을 만하다.

그의 보고서가 하필 반 총장의 노르웨이 방문 직전 언론에 유출된 것도 석연치 않다. 반 총장이 노르웨이에 간 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북극 빙하가 녹아 내리고 있는 현장을 반 총장이 직접 방문해 세계인의 시선을 끌자는 취지였다. 이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재를 뿌린 건 이유가 어찌됐든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비판론자는 무엇보다 반 총장이 독재권력과 타협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세계 인권의 보루인 유엔의 도덕적 권위가 훼손됐다는 것이다. 반 총장이 미얀마의 독재자 탄 슈웨 장군과 아프리카 다르푸르 학살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의 수배를 받고 있는 수단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 수천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스리랑카 내전 장본인 마힌다 라사팍사 대통령을 만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독재 권력을 향해 일갈(一喝)해야 할 유엔 수장이 이들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이 보수파에겐 실망스러웠을 수 있다.

그러나 비판론자는 반 총장이 독재자를 왜 만났고,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선 애써 외면한다. 미얀마 슈웨 장군과의 담판으로 50만 명의 사이클론 이재민이 목숨을 건졌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다르푸르에 주둔하게 된 건 반 총장이 수단 바시르 대통령을 압박한 결과다. 스리랑카 내전에 국제사회의 눈길이 쏠린 것도 반 총장이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든 덕분이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건 조직 장악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그가 밀어붙이고 있는 유엔 개혁의 후유증일 수도 있다. 개혁엔 저항이 따른다. 그럴수록 총장의 방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집안 단속을 잘 못하면 밖에서 아무리 수확을 거둔들 빛이 바랠 수 있어서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