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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한 형식미…볼거리 '듬뿍' -극단 작예모 '찬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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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뚫어져라 관객을 응시하는 강렬한 눈빛, 어느 것 하나 계산에서 누락되지 않은 치밀한 동작, 낯설긴 하지만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고어 (古語) 들…. 싸구려 연극 범람으로 관객잃은 대학로에 극단 작예모가 모처럼 제대로 된 볼거리를 들고 관객을 찾아왔다. 탄탄한 대본에다 장중한 형식미를 갖춘 '찬탈' (이희준 작.김운기 연출) 이다.

이름을 날리는 연출가도, 스타 연기자도 없지만, TV드라마나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연극양식을 보여주며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극 중심을 이루는 치희.화희 왕비와 해명왕비 등 주요 인물들은 고구려 설화에서 빌려 왔지만 작품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을 닮았다.

왕위를 빼앗고 형의 부인마저 가로챈 왕과 죽은 왕의 아들 햄릿이라는 설정이,치희왕비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 화희왕비 (천정명) 와 치희의 아들 해명왕자 (정유석) 로 바뀌어 있다. 여기에 충직한 제관 (祭官) 사비 (고물상) 와 모사꾼 설지 (이경희), 충신 두로 (조강상)가 얽히고 설킨다.

작가의 상상은 나라를 빼앗기고 정복국에 끌려온 치희가 왕과 태자마저 없애고 모국 (母國) 을 되살리려는 음모를 벌여나가는 것으로 뻗어있다.

작가의 상상대로라면 역사는 이미 화희의 뜻을 이루고도 2천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작가는 다시 스스로의 상상을 뒤집는 시도를 한다. 1999년 왕의 석실묘 속 토용들이 깨어나 억울한 치희의 원한을 덜어주고자 역사를 되돌리는 가상극을 꾸미는 것이다.

고사성어와 고어, 삼국지를 인용한 상징과 은유가 넘치는 대사는 쉬운 텍스트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동시에 타임머신을 탄듯한 신비감을 준다.

기체조를 하듯 과장된 배우들의 몸놀림은 색다른 연극적 재미를 준다. 토용들이 해명태자에게 범인을 알려주기 위해 동원하는 가면과 인형극, 소리는 우리 전통양식을 차용했다. 극을 풀어내는 방식도 다분히 설화적이다.

'논배미에 앉은 꿩을 누가 잡아먹었나. 아무리 둘러봐도 볏집더미 뿐…. ' 이라고 토용들이 던진 암호노래를 해명이 볏단, 즉 화희 (禾姬)가 꿩 (치희.雉姬) 을 죽였다고 깨닫는 식이니. 4월 4일까지 오후 7시 30분, 금.토요일 오후 4시 30분 추가, 일요일 오후 3시.6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공연. 02 - 741 - 7853.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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