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한국변호사의 윤리수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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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9일자 '한국변호사도 지킬건 지킨다' 라는 안원모 변호사의 반론을 읽으면서 방어의 논리가 우선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심정이 앞선다.

필자가 주장한 2일자 발언대의 '한국 변호사의 또다른 잘못' 은 한국 사법제도가 보다 높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기를 바라며 국내 법조계 일부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필자는 2일자 발언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대립되는 두 사건을 한 변호사가 동시에 맡아 처리하는 것 (conflict of interest)에 대한 규제가 전무하다시피한 실정" 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안변호사는 변호사법 24조 (수임제한) 를 인용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고 했다.

그러나 동법 24조는 미국 변호사 윤리규정과 비교해 볼 때 규제범위가 매우 좁고, 법조문 해석도 분분할 수 있다.

특히 24조에는 '사건' 이란 단어가 정의돼 있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송 당사자가 돼야만 이해가 상충되는 것으로 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나아가 요즘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기업 인수.합병 (M&A) 과 같은 '비즈니스' 업무는 24조의 '사건' 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한 로펌의 변호사가 A사의 M&A를 맡고 있어도 그 로펌에서 일하는 다른 변호사가 A사의 경쟁사를 위해 일하더라도 24조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변호사가 맡아서는 안되는 사건을 정하는 데 있어 이해상충되는 두 케이스의 상관관계의 정도 (substantial relationship) 를 따지는 미국 변호사 윤리규정에 비춰본다면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A사의 기밀보장이 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변호사의 윤리규정은 로펌의 경우 단 한명의 변호사가 A라는 의뢰인의 기밀을 알고 있더라도 로펌 전체가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해상충되는 업무를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매우 기초적인 윤리규정이다.

변호사법 24조가 있기 때문에 이해상충 사건의 수임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는 안변호사의 논리는 마치 도로 교통법이 있으니 교통위반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는 주장과 흡사하다.

많은 이들이 교통위반을 하지만, 일부만이 위반티켓을 받는다. 또 안변호사는 24조 위반으로 징계된 사례가 있다고 했지만 대한변협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93년부터 98년까지의 징계건수 1백95건 중에서 24조 위반 관련 징계건수는 4건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의정부사건 때문에 6년간 총징계건수의 70%가 넘는 1백44건이 이루어졌다.

안변호사는 또 필자가 "몇몇 대규모 법률회사만을 상대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는데 이는 '몇몇 대규모 법률회사' 는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사건을 동시에 맡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점은 곧 개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변화는 쉽지 않지만 변화 없이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 를 주장하는 안씨의 주장이 얼핏 현실적인 듯 보이지만 의뢰인을 보호하는 변호사의 직업성격을 고려할 때 변호사의 양심을 심판하는 '윤리규정' 은 동서양의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李元照 한국IBM 상임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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