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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18시간 고달픈 레스토랑 인턴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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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지난달 30일 밤(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 조그만 아파트에서 프랑스·한국인 요리사와 소믈리에들이 모인 가운데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프랑스 정부가 인증하는 최고 수준의 소믈리에 자격증인 BP(Brevet Professionel)를 딴 곽동영(29·사진)씨에게 축하인사를 하기 위한 자리였다.

곽씨가 딴 것은 가장 높은 권위의 2년 과정 BP이다. 1년 과정으로 얻을 수 있는 일반 소믈리에 자격증인 MC(Mention Complimentaire)나 1년 과정의 BP보다 높은 권위를 인정받는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박씨는 지난 4년간 프랑스에 머물며 와인 공부와 수련을 해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어를 전공했는데, 갑자기 프랑스로 와인 공부를 온 이유는 무엇인가.

“2000년에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와인에 눈을 떴다. 현지 음식점에서 일을 했는데 다양한 와인을 접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뒤 잠시 대기업에서 일하다 와인에 대한 열정을 지울 수가 없어 프랑스로 떠나게 됐다.”

-와인에 대한 식견을 늘리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떻게 단기간에 최고 전문가 수준에 올랐나.

“2006년 와인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는 뭐가 뭔지 몰랐다. 그러나 다양하게 경험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업그레이드가 되는 걸 느꼈다. 1년 뒤 MC 소믈리에 자격을 딴 직후엔 내가 와인 최고 전문가라는 착각도 했다. 그러나 BP 소믈리에 과정을 시작하자 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때 많이 좌절했다. 그러나 꾸준히 맛보고 프랑스 전국 방방곡곡의 와이너리를 찾아다니며 공부하면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BP 소믈리에 코스는 어떻게 이뤄지나.

“2년 동안 꼬박 와인에 묻혀 산다고 보면 된다. 한 달에 일주일 수업을 하고 나머지 3주는 인턴 과정을 이수해야한다. 와이너리에서도 일도 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 인턴도 해야 한다. 특히 레스토랑 인턴의 경우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격무를 견뎌야 한다. 8주 동안 전국의 유명 와이너리를 견학하는 수업도 있다. ”

-BP 소믈리에 자격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으로 들었다.

“가장 까다로운 건 와인 분석이다. 화이트와 레드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 한 뒤 40분 동안 각각 와인의 성격을 분석하도록 한다. 와인의 지역과 빈티지, 향과 어울리는 음식, 포텐셜과 예상 가격 등을 적어내는 것이다. 최고급 와인을 주면 여러 가지 쓸 말이 많은데 그렇지않을 경우가 어렵다. 이번에 나온 레드와인은 별로 좋지않은 것 같아서 솔직한 느낌을 적고 나 같으면 사지않겠다고 썼다. 그 테스트에서 1등을 했다. ”

-소믈리에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5주간의 소믈리에 인턴 과정은 정말 힘들었다. 특히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에게 와인을 권하기 위해 테이블로 가면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소믈리에 교체를 요구하곤 했다. 그때마다 참 많이 울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와인이 있다면.

“부르고뉴 도멘 앙리자이에의 크로 파랑투는 최고였다. 장미와 피브완 향이 마개를 열면서부터 마지막 한 잔까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최고 레스토랑에서 맛을 봤기 때문에 음식과도 잘 어울렸다. 값싼 와인으로는 쥐라의 도멘 가네바 역시 훌륭했다. 100% 내추럴 와인이어서인지 자연의 맛이 풍부하게 느껴졌다 ”

-프랑스 와인 전문가로서 한국 음식과 프랑스 와인의 궁합은 어떤가.

“한국 음식은 갈비처럼 달고 양념이 많은 음식과 매운 음식이 많다. 이런 맛을 적절하게 감쌀 수 있는 와인은 얼마든지 있다. 보르도 부르고뉴보다는 루아르나 바스크 지방 와인들이 특히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국 음식의 특성을 잘 고려해 와인을 선택한다면 한식세계화에 큰 도움이 되지않을까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에 들어가서 질 좋고 값싼 프랑스 와인을 많은 와인 애호가에게 내놓고 함께 즐기고 싶다. 특히 프랑스에서 뜨기 시작하는 자연 와인을 소개하고 싶다. 무농약에 최소한의 첨가제만을 넣기 때문에 원초적으로 힘있고 아름다운 맛을 느낄 수 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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