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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hot issue] 장 푸르베가 온다, 학창 시절 ‘그 의자’ 만든 디자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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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1.1951년에 디자인한 ‘스탠더드 체어’ 2. 등받이와 시트를 포갤 수 있는 이 접이 의자는 1930년에 총 6점밖에 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다. 3. 비트라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안락의자 4. ‘그랑 르포’라는 이름의 이 의자는 1930년에 제작됐다. 현재 작품 가격이 15억원을 호가한다. 5. 1954년 제작된 ‘안토니 체어’

이달 18일부터 11월 29일까지 서울 대림미술관(서울 종로구 동의동, 02-720-0667)에서 ‘장 푸르베 회고전’이 열린다. 가구 디자이너이자 동시에 건축가였던 장 푸르베(1901~84) 타계 25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디자인 미술관인 독일의 비트라 디자인미술관과 대림미술관이 함께 준비한 대규모 전시다.

“만들어 낼 수 없는 디자인은 생각지도 말라”고 했던 장 푸르베는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 철학을 가진 인물로 ‘20세기 실용 디자인의 선구자’로 꼽힌다.

최근 2~3년간 인테리어 업계에서 불고 있는 빈티지 열풍 덕에 ‘20세기 가구 디자인의 걸작’으로 불리는 의자들과 종종 마주치게 된다. 주로 청담동과 홍대 앞 카페에서다. 그것을 만든 디자이너들의 이름도 알게 됐다.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루트비히 마이에스 반 데 로에, 핀 율, 한스 베그너, 아르네 야콥센, 알바 알토, 피에르 폴랑, 베르네 펜톤…. 올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우리나라에서 카피 제품이 가장 많이 돌아다닌다는 찰스 임스(작품을 말할 때는 역시 가구 디자이너였던 아내 레이와 함께 ‘찰스&레이 임스’로 불릴 때가 많다)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런데 미처 체험하지 못했던 ‘디자인 문화’이고 보니 전공자가 아닌 평범한 우리로서는 디자이너와 작품의 연결이 생각만큼 잘 외워지지 않는다. ‘에그 체어’와 ‘펠리칸 체어’는 생김새로 구분을 하겠는데 그것을 만든 디자이너의 이름은 헷갈린다. 당연히 디자이너의 고유한 특성도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안 된다. 문화는 일상에서 반복 체험되면서 자연스럽게 흡수된다는데, 역시 환경이라는 게 무섭다. 20세기 가구 디자인 걸작들은 우리에게 생소할 뿐이다.

그런데 장 푸르베는 조금 다르다. 적어도 6년 이상 우리는 장 푸르베의 의자를 이용했다. 바로 학교 의자다.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 학교 의자가 장 푸르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스탠더드 체어’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장 푸르베 디자인의 장점이자 특성인 ‘기능성, 조형성, 산업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의자임은 분명하다. 온종일 우리의 척추를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있을 만큼 견고하지만 청소 시간에 이동하거나 심지어 벌로 들고 있는 것도 가능할 만큼 가벼웠다. 디자인은 학교라는 공간에 잘 어울릴 만큼 간결했다.

우리나라에서 유럽과 미국의 유명 빈티지 가구를 가장 많이 보유한 Aa뮤지엄(카페와 전시장을 겸한 공간이 홍대 앞에 있다)의 김명한 대표는 장 푸르베를 “좋은 디자인이 갖춰야 할 조형성, 실용성, 시대성 3박자를 모두 겸비한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철이 여러 가지 제품에 사용됐죠. 장 푸르베는 프레스 가공법을 이용해 철을 가구에 응용한 장본인입니다. 프레스 기법으로 철을 가공하면 내구성은 높아지고 무게는 가벼워지죠. 산업적으로는 만드는 기간이 짧아지고 가격도 싸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장 푸르베의 업적이죠.”

북아프리카에 식민지가 많았던 프랑스는 군인들을 파견하면서 해체·조립이 가능하고 이동이 간편한 가구와 건축물을 필요로 했고, 그것을 가능케 한 인물 역시 장 푸르베라고 한다. 김 대표가 말한 3박자 중 ‘시대성’에 해당하는 얘기다.

유명 디자이너들에 의해 6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미국과 유럽의 가구들이 ‘빈티지 열풍’을 타고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가구가 만들어진 첫 번째 목적은 일상에서 사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후 고려돼야 할 것이 ‘얼마나 기능적으로 편하고 견고한가, 또 오래 두고 볼수록 가치가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가’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친숙한 장 푸르베의 작품들은 가구의 존재감과 매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대림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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