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혈관 보면서 치매·뇌졸중 조기 진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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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의학계의 꿈은 살아있는 사람의 뇌에서 이런 아밀로이드나 가느다란 혈관을 영상으로 보고 조기에 뇌 질환을 진단,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뇌 영상기기는 세상에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사망한 환자의 뇌를 해부해야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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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국이 뇌 영상기기의 최선봉인 7테슬라 MRI가 상용화 되기도 전에 ‘차차세대 뇌 영상기기’의 개발 전쟁을 또 벌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미국과 일본·프랑스·한국 등이 7테슬라 MRI보다 1.7~2배 이상 초고해상도 MRI의 개발 경쟁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현재 최신 상용 MRI는 3테슬라다. 7테슬라는 성공적인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다.

◆7테슬라 MRI의 패자가 ‘전쟁 선포’=프랑스와 일본은 7테슬라 MRI 개발 경쟁에 한참 밀렸다. 몇 년 전 개발 초기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미국·독일 등이 7테슬라 MRI 개발에 나서자 과학계에서는 ‘도박’ 또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수근 댔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보는 사람은 없으며, 개발 경쟁이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프랑스는 프랑스과학재단과 CEA연구소 등이 연구비를 대 2007년 11.7테슬라 MRI 개발에 나섰다. 초기 연구비는 5000만 유로(약 890억원). 프랑스 인근 오르세이에 부지 1만1400㎡를 마련했다. 2011년 개발 목표다. MRI의 영상 선명도는 자석의 세기(단위는 테슬라)에 달렸다. 그 세기가 세면 셀수록 영상이 선명하다.

7테라스 MRI의 거대한 전자석. 촬영 때는 검은 원 안으로 환자가 들어간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도쿄대는 가시와 캠퍼스 4만㎡에 11.7테슬라 MRI 센터를 만든다는 목표로 정부와 협의 중이다. 7테슬라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미국은 11.7테슬라 또는 14테슬라 MRI 개발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한국은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14테슬라 MRI 개발을 기획하고 있다.

◆아무나 시도 못해=초고해상도 MRI는 수십 t짜리 11.7~14테슬라의 강력한 전자석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3테슬라 MRI의 개발이 절정에 올랐을 때 독일과 미국·한국 등이 7테슬라 MRI 개발에 도전한다고 하자 너도나도 고개를 저었던 이유다.

뇌과학연구소 조장희 박사가 7테슬라 MRI의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1981년 0.1테슬라 MRI와 85년 2테슬라 MRI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직접 개발하는 등 30년 가까이 MRI를 개발해 본 경험과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뇌과학연구소와 똑같은 7테슬라 MRI를 독일 지멘스·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으로부터 연구용으로 사 설치해 놓은 30개 외국 연구소들 중 서너 곳을 제외하고 영상다운 영상조차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술력 차이다.

조 박사는 “14테슬라 MRI는 전자석 개발·영상 재구성 등 하나하나가 기존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이다. 세계에서 1등을 하려면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뇌 질환 원인 눈으로 보는 시대=뇌과학연구소는 7테슬라 MRI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뇌졸중을 일으키는 약간 가느다란 뇌 혈관을 영상으로 찍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혈관이 막혀 있으면 뇌졸중의 전조다. 3테슬라 MRI로는 전혀 보이지 않던 혈관들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국내외 많은 기업 총수들이 뇌과학연구소를 방문해 뇌를 촬영했다. 14테슬라 MRI가 개발되면 7테슬라 MRI에서 보지 못한 살아있는 뇌 구조의 영상이 나타날 것이다. 뇌졸중을 일으키는 더 가느다란 미세혈관을 비롯해 미세 신경 다발·단백질 분포 등을 영상으로 보면서 다양한 뇌 질환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할 날이 멀지 않았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테슬라(Tesla)=자장(자석)의 단위로 T로 표시한다. 1테슬라는 1만 가우스다.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지구 자장은 0.2가우스. 14테슬라는 지구 자장에 비해 70만 배가 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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