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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스탠리 큐브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세계 영화산업은 할리우드가 지배한다.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워 비 (非) 할리우드적 인재들까지 흡수해버린다.

할리우드에 '팔려간' 인재들은 처음엔 독자적 개성을 주장하지만 얼마 안 있어 그 거대한 체제에 순화 (馴化) 되고 만다.

하지만 이같은 운명을 끝까지 거부한 예외적 경우도 있다.

스탠리 큐브릭은 미국 영화감독들 중 가장 반 (反) 할리우드적인 감독이다.

1928년 뉴욕 브롱스에서 유대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큐브릭은 고교 졸업후 잡지사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영화를 독학했다.

초기 몇편의 다큐멘터리 작품을 거쳐 53년 극영화 '공포와 욕망' 을 시작으로 56년 '살해' , 57년 '영광의 길' 을 잇따라 발표했다.

'영광의 길' 은 큐브릭의 출세작으로 1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 장성이 전공 (戰功) 을 세우기 위해 병사들을 희생시키는 비인간성을 고발한 반전 (反戰) 영화다.

60년 발표한 '스파르타쿠스' 는 큐브릭이 처음으로 할리우드와 손잡고 만든 영화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노예반란을 다룬 이 영화는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제작했다.

'영광의 길' 에 출연하면서 큐브릭의 재능에 주목한 더글러스는 큐브릭에게 감독을 맡기고, 자신이 스파르타쿠스 역을 맡았다.

'스파르타쿠스' 는 '반란과 혁명의 서사시' 란 평가를 받았다.

큐브릭은 할리우드 자본으로 반체제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후 큐브릭은 반체제 지향의 영화를 계속 만들었다.

중년남자와 12세 소녀의 부도덕한 사랑을 그린 '롤리타' , 극단적 공산주의 혐오자로 인한 미.소 핵전쟁을 다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 미래사회의 폭력과 인간성 파괴를 다룬 '클록워크 오렌지' 등이 그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와 '클록워크 오렌지' 는 영화 사상 손꼽히는 블랙 코미디다.

큐브릭은 68년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SF영화의 고전이 됐다.

'2001년' 은 인간의 과거와 미래, 기계문명의 공포와 신의 문제를 다룬 '탈 (脫) 체제적' 영화다.

그리고 큐브릭의 마지막 (87년) 작품인 '풀 메탈 재킷' 은 베트남전을 주제로 한 반전영화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할리우드 상업주의를 증오하면서 61년 영국으로 건너가 은둔해온 큐브릭이 7일 세상을 떠났다.

46년 동안 그가 만든 영화는 13편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이다.

올 여름 개봉 예정인 그의 유작 '와이드 아이즈 샷' 이 어떤 영화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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