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담보 소액대출 창업 ‘절반의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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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크레디트로 5000만원을 대출받아 삼성동에서 창업한 이창준씨가 떡을 만들고 있다. [최승식 기자]

4개월 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떡집 ‘휘천시루’를 개업한 이창준(33)씨. 그는 강남구청의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 사업에 지원해 5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원금에 연 2%의 이자를 5년 동안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4년제 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창업을 위해 2년 동안 떡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그런 그에게 마이크로 크레디트 대출은 절호의 기회였다. 떡집을 차린 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17시간씩 일했다. 일이 많은 날은 카운터 뒤에 자리를 깔고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나 3개월 동안 한 푼도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 대출받은 5000만원 이외에도 권리금·인테리어비 등으로 7000만원을 개인에게 빌린 까닭에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이씨는 “자신의 실력과 자신감만 믿고 사업을 시작하면 낭패를 보게 된다”며 “저리 대출이라고 해도 어차피 빚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구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이인 ‘희망실현창구’가 참가자 모집에 나선 지 1년이 지났다. 대출받은 사람은 모두 20명, 이들의 경영 성적표는 몇 점일까.

지난해 12월 첫 문을 연 ‘행복을 파는 과일 가게’와 ‘훼미리 마트’는 월매출 3000만원 이상을 올려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행복을 파는 과일 가게’의 이준용(46) 사장은 하루에 두 가지씩 전략 품목을 선정해 판매하는 영업 노하우를 개발했다. 아무리 먼 지역도 밤 12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배달을 다니며 단골을 확보했다. 이씨는 “창업 지원금을 받은 덕분에 아무리 성실히 일해도 빚만 늘던 가난의 악순환이 끊겼다”며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이 내 인생에 새로운 물꼬를 틔워줬다”고 평가했다.

12평 남짓한 공간에서 월 2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스시생’의 김윤상(45)씨는 거듭되는 외식 사업 실패로 한때 파산선고까지 받았다. 김씨는 마지막 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지원을 신청해 창업했고 고급 초밥을 1만원대 중저가에 판매하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모두 탄탄대로를 걷는 것은 아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다 경영이 어려워 2000만원을 대출받은 김모씨는 영업 부진으로 6월 폐업했다. 꽃집을 운영하는 한 창업자는 “교육과 실전은 전혀 다르다. 1~2회 교육만으로는 창업 후 부닥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응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혼자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창업자는 “임대료가 낮고 권리금이 없으면 목이 나빠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며 “이왕 하는 거 잘해보고 싶은 욕심에 여기저기 빚을 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이용만 기업지원팀장은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 초기 지원 금액을 8000만원으로 올리고 현장 실습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보완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대명 박사는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이상적인 모델은 지속적인 사후 관리를 통해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지만 비용 문제가 생긴다”며 “ 자조적인 모임을 구축해 서로 기술과 노하우를 교환하고 공동 기금을 마련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저소득층에 무담보로 소액을 대출해 자립을 돕는 제도. 1997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이 시초다. 보건복지가족부, 서울시, 강남구 등 정부나 지자체, 민간기업이 한 사람에게 최대 2000만~5000만원씩 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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