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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의 FUNFUN LIFE] 첫인상,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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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피곤해 눈 동그랗게 뜨고 있는 김영철 오빠의 ‘지못미 사진’에 포샵으로 안경 하나 씌워 봤네요. 그랬더니 좀 더 똑똑해 보이지 않나요? 작은 변화가 인상을 바꾼답니다.

우리 아버지는 용접과 새시 같은 것를 다루는 일을 하신다. 그러다 보니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고 계실 때가 많다. 한 번은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일하다 말고 갑자기 생각이 났단다. 그래서 급하게 축의금만 내고 오려고 갔는데 문 앞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기름 묻은 옷 때문에 거지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참 가슴 아프고 참담했다. 겉모습과 옷차림만으로 사람을 판단한 그 사람들을 원망도 했다.

물론 나도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해봤다. 특히 학창시절엔 새 학기만 되면 ‘싸가지없게 생겼다’는 선배들의 말을 많이 들었다. 연예인이 되고 난 뒤에는 내가 담배를 피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깜짝 놀랐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하면, 당연하다는 듯 재차 묻는다. “언제부터 끊었어요?” 목소리도 맑지 않고, 행동도 덜렁대니 그럴 만도 하다고 이해는 한다. 그래도 내 이미지와 말투 때문에 생긴 이 오해들을 제대로 해명할 수 없으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도 그런 선입견과 편견으로 사람을 대하는 일이 많았다.

한 예로 지금은 아주 친한 개그맨 김영철 오빠와 관련된 일화다. 8년 전쯤 샤크라 활동을 할 때였다. K방송국 복도에서 오빠를 처음 보고 우리는 모두 인사를 했는데, 그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그냥 흘끗 보며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물론 당시에 누군가와 심각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기는 했다. 이 첫인상 때문에 나에겐 ‘김영철은 인상도 더럽고 인사도 잘 안 받는 아주 못된 개그맨’이라는 인상이 박혔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다르게 말을 했다. ‘김영철은 인사성 밝고 항상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마스코트’라는 거였다. 이렇게 상반된 평가에 처음엔 의아했다. 실제로 알고 보니, 이 사람처럼 진국이 없었다. 이 지면을 빌려 오빠에게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해 버린 내 실수를 사과하며 반성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생각해 보니 나도 선입견으로 남을 오해하고 판단한 경우가 참으로 많았다. 나는 특히 외동딸은 일단 피하고 보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 나랑 자주 싸우던 여자 아이들은 모두 외동딸이었다는 데서 기인한다. 처음엔 알고 싸운 게 아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모두 외동딸이었던 것이다. 고무줄놀이를 할 때나 공기놀이 할 때, 암튼 뭐든 게임 같은 걸 할 때마다 제멋대로 우기는 바람에 늘 싸움이 됐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외동딸은 이기적’이라는 편견이 박혀버렸다. 내가 만났던 몇 명의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외동딸이나 외아들을 만나면 “집에서 곱게 자랐죠?”라는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지곤 한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하는 일이라 나도 그렇긴 하지만, 사람을 처음 만나면 나이·이름·가족관계에다 사는 곳까지 두루 묻고는 여기에 혈액형까지 알아내려고 한다. 그러곤 영국에서 통계를 냈다는 기준에 따라 ‘A형은 소심하겠구나, O형은 성격이 좋겠구나, AB형은 변덕스럽겠다, B형은 차갑겠다’는 식으로 예단을 내린다. 곱슬머리의 최씨 성을 가진 남자를 보면 ‘이 사람 성격 만만찮겠는걸’ 하고 생각해 버린다.

이렇게 늘어놓다 보니 나도 반성할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서 선입견과 첫인상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첫인상이나 끝인상이 별로인 사람도 있지만, 첫인상은 별로였는데 알고 지내다 보니 괜찮은 사람, 처음엔 괜찮다 생각했는데 갈수록 별로인 사람도 많다.

편견까지는 안 가더라도 이미지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실수를 하게 되는 지름길이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들만큼 대중들의 선입견에 좌우되는 사람들도 없을 거다. 알고 보면 천사 같은 사람인데 악역만 주로 하다 보니 욕먹는 사람도 있고, 알고 보면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을 대중들은 ‘천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때로는 사람을 속이기도 하는 것이다. 쓰고 보니 취미 칼럼에 취미와 상관 없이 ‘선입견’ 얘기를 잔뜩 써놨다. 그냥 내 생각은 이거였다. 선입견 하나만 정리해도 세상은 좀 더 펀(fun)하고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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