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통해 다시 본 중국혁명-미 스펜스교수의 '천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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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국 현대문학의 창시자, '아Q정전' 의 작가로 기억되는 루쉰 (魯迅.1881~1936) 은 청년시절 치통을 앓았을 때 한의사으로부터 "치아와 신장, 신장과 성기가 연결돼 있으니 심한 자위행위를 금하라" 란 진단을 받는다.

이에 할 말을 잃은 루쉰은 중국인의 무지에 통탄하며 서양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고 그 후에는 국민성 개조를 위해 문학을 지향한다.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딩링 (丁玲.1904~1986) .20대 때 성을 탐닉했고 그 후 마오쩌둥과 혁명사업을 같이하다 투옥과 복권을 경험하는 굴곡의 삶을 살았다.

1923년 베이징에서 루쉰의 과목을 청강하며 19세 동갑내기 작가 지망생 후예핀과 동거를 시작한 것은 파란만장한 삶의 전주곡이었다.

공자도 변화와 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한 개혁자였다며 서양문물을 속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편 캉유웨이 (康有爲.1858~1927) .그는 상식을 뒤업는 타고난 개혁주의자였다.

각각의 연유들로부터 출발해 중국 근대사 전편에 한 획을 그은 캉유웨이.루쉰.딩링. 이들을 통해 중국혁명의 과정을 한 편의 대하드라마로 엮어내는 조너선 스펜스 (미 예일대 석좌교수) 의 저서가 '천안문' (정영무 옮김.이산.1만5천원) 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중국 혁명의 의미를 인물들을 통해 보려한다고 밝힌다.

하지만 쑨원이나 장제스.마오쩌둥을 뒤로하고 작가 혹은 유학자로 혁명의 이선에 머물렀던 이들에게서 의미를 찾는 일은 저자의 독특한 주관에서 비롯된다.

중국 혁명을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이 아니라 민족주의.실용주의.개인주의 혁명으로 보며 과학적이고 낭만적인 그리고 여성해방의 혁명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스펜스는 그가 선택한 세 명의 인물이 혁명의 핵심은 아니어도 그들의 인생 역정 자체가 바로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물들의 글.행동.사상을 통해 중국혁명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으며 그의 독특한 역사 통찰력과 문학적 글쓰기는 중국사의 한 장면 한 장면을 현실감있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천안문' 과 때를 같이해 출간된 '민족혼으로 살다' (학고재.1만5천원) 는 전인초 (연세대 중문학) 교수 등 국내 학자들이 루쉰의 유적지를 답사하며 그의 삶과 문학을 복원하고 있다.

마오쩌둥에 의해 "위대한 문학가일뿐 아니라 사상가이자 혁명가" 란 칭송을 들은 탓에 좌익운동의 선봉으로 비춰지기도 한 루쉰. 그러나 현장을 답사한 국내 학자들은 "이는 우상화 과정에서 일부 다르게 나타난 허상" 이라며 "루쉰이 공산주의에 관심은 있었으나 확신감은 없었다는 것이 중국 젊은 학자들의 주된 주장" 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스펜스가 서술하고 있는 루쉰의 모습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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