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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를 다루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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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프로골퍼 양용은 선수에게 누군가 물었다. “만약 타이거 우즈와 마지막 4라운드에서 다시 라운딩을 한다면 이전처럼 이길 자신이 있나?” 양용은의 대답은 이랬다. “그때처럼 다시 해도 ‘나만의 골프’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된다는 보장이 없어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짧은 대답이지만 의미심장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승부사의 법어(法語)’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프로 골퍼에게 타이거 우즈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통한다. 특히 선두를 달리는 타이거 우즈와 마지막 날 같은 조에서 함께 공을 친다는 것은 공포에 가깝다. 그가 입는 붉은 티셔츠만 봐도 오금이 저리기 때문이다.

그 공포를 ‘시카고 트리뷴’에선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울 때 인간은 극한의 공포를 체험한다. 챔피언조에서 타이거 우즈와 마지막 라운드를 하는 게 그런 거다. 마치 마취 주사를 맞지 않고 외과 수술을 받는 것과 같다.” 어떡해야 그런 공포를 안고서도 대담하게 드라이버를 치고, 정교하게 퍼팅을 해낼 수 있는 걸까.

최경주 선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마지막 라운드의 승부처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냉동실에 넣었던 고무줄을 꺼내 보라. 잘 꼬이지 않는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긴장하면 몸에서 젖산이 분비된다. 그럼 냉동실의 고무줄처럼 허리가 꼬이지 않는다. 승부처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최경주 선수가 택한 ‘비법’은 성경 읽기였다. 티샷을 한 뒤 세컨드샷 지점까지 걸어가며 그는 성경 구절이 적힌 종이쪽지만 읽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골프를 잊고, 승부를 잊기 위해서였다. 결국 두려움과 불안, 공포를 떨치기 위함이었다. 양용은 선수도 그랬다. “타이거 우즈와 다시 겨룬다면?”이란 물음에 그는 “나만의 골프를 하겠다”고 답했다. 눈앞에 보이는 ‘붉은 티셔츠’에 요동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된다는 보장이 없어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무심코 던졌을지도 모르는 이 한마디에는 ‘승부사의 지혜’가 번득인다. 골프에만 해당되는 노하우가 아니다. 인생에도 적용되는 비법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나만의 타이거 우즈’를 만난다. 때로는 내 안에서, 때로는 내 밖에서 말이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외과 수술대의 공포’가 솟구친다. 상대를 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필요한 게 ‘나만의 골프’다. 두려움과 집착을 내려놓고 걸어가는 ‘나만의 인생’ 말이다. 결과를 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나만의 걸음걸이’ 말이다. 붉은 티셔츠에 대한 공포도 내려놓고, 메이저대회 우승에 대한 욕심도 내려놓고, 그저 눈앞에 펼쳐진 조건에서 또박또박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그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타이거 우즈’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골프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 결국 힘을 빼는 일이다. 마음의 힘(집착)을 빼는 게 지혜이고, 몸의 힘을 빼는 게 굿샷이다. 그렇게 힘을 뺄 때 ‘나의 타이거 우즈’를 무너뜨리는 힘이 나온다.

백성호 문화스포츠 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