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잔혹한' 영화 홍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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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잘라 믹서에 간다, 태아를 다져 만두로 빚는다, 자기 태아까지 희생물로 삼는다…. 아무리 영화라도 너무하다 싶은 장면이 적지 않은데도 공포영화 '쓰리, 몬스터'(영화사 '봄' 제작)는 최근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제한상영가'가 아닌 '18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너무 끔찍한 장면들이 논란을 빚고 있다는 본지 기사가 나간 다음날인 10일 영화사 측은 '잔혹성 논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다'라는 제목의 홍보 메일을 각 언론사에 뿌렸다.

이 메일은 "최근 가장 엽기적이라는 평가로 화제를 모았던 예고편에 이어 또다시 네티즌을 달구고 있는 '쓰리, 몬스터'의 잔혹성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관객의 몫"이라며 잔혹함을 거꾸로 홍보 수단으로 삼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앞서 제작사는 지난달 19일부터 영화 속의 끔찍한 장면을 모아 놓은 예고편을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네티즌의 비판이 잇따르자 이를 수정하기는커녕 '영상 충격! 무섭지만, 안 보고는 못 배기는 잔혹한 예고편'이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영등위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극장용 예고편과 달리 인터넷 예고편은 심의가 필요 없다는 허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를 본 일부 청소년은 "재미있어 보이는데 18세 관람가라 볼 수 없어 아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영화사 '봄' 관계자의 해명은 궁색하다. "영화가 잔혹하다는 것을 모르고 온 관객들에게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잔혹한 장면을 담은 예고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언론에서 선정성이나 폭력성을 비난하면 오히려 화제를 모아 관객이 느는 사례가 많았다. 이 때문에 많은 영화가 네거티브 홍보 전략을 펴 왔다. 그러나 영화는 이윤을 내야 하는 상품인 동시에 '문화'이기에 장삿속에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볼 것을 뻔히 알면서 인터넷에 잔혹한 동영상을 올리는 것은 단지 등급 제도를 무시하는 것뿐 아니라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도 외면한 처사다. 제작사가 이 글마저 또 영화 홍보에 악용하려 들까봐 걱정이 앞선다.

안혜리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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