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제 실시문제 해법 고민하는 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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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권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사회안전망 구축정책의 핵심인 국민연금제 실시문제로 된 몸살을 앓고 있다.

예정대로 4월 1일부터 전국민확대실시를 할 경우 도시자영업자.부녀자 계층의 저항이 예상돼 코 앞에 다가온 구로을 등의 재.보궐 선거는 물론 내년 4월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정략적 접근은 장기적으로 볼 때 개혁과 선거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게 여권핵심의 확고한 인식이어서 일단은 강행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미국이 대공황 시절인 1935년 이 제도를 도입했고, 영국과 독일이 전후복구로 어려울 때인 47년과 48년에 각각 국민연금을 실시했던 것처럼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시기에 혁신적인 사회복지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닥치자 당황하는 모습도 역력하다.

20일 당정회의에 참석한 국민회의의 당 3역을 비롯한 정책관계자 전원, 당 소속 보건복지위 의원, 대변인 중 상당수는 걱정을 감추지 않았다.

박광태 (朴光泰) 제2정책위원장은 "정부 때문에 당이 망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과연 누구의 정부냐" "16대 총선 후로 연기해야 한다" 고 단호한 어조로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이기문 (李基文) 의원은 "국민회의 지지자가 국민연금을 실시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고, 특히 부녀자들 사이에 여론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고 보고했다.

조성준 (趙誠俊) 의원은 "아무리 좋은 보약이라도 억지로 먹이면 탈이 나는 법" 이라며 가세했다.

정동영 (鄭東泳) 대변인도 "하이텔 등 컴퓨터 통신 여론조사에서 70%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며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무리한 강행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고 거들었다.

그는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全啓烋) 측의 준비 미흡에 분통을 터뜨리며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이런 사태를 낳은 당국은 책임을 져야 한다" 고 全이사장에게도 화살을 퍼부었다.

사태가 이쯤 되자 당쪽 책임자격인 김원길 (金元吉) 정책위의장조차 "국민연금 확대실시의 필요성과 취지는 공감하나 보건복지부가 마련할 보완책에 문제가 있을 경우 실시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한화갑 (韓和甲) 원내총무와 정균환 (鄭均桓) 사무총장, 남궁진 (南宮鎭) 제1정조위원장, 이석현 (李錫玄) 제3정조위원장 등은 "이 시점에서 취소냐 강행이냐는 식의 접근은 의미가 없다" 면서 "연금 확대실시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이미 여야가 합의한 사안인 만큼 그대로 가야 한다" 고 못을 박았다.

YS임기 말에 98년 7월부터 실시키로 합의했다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시절 이를 98년 10월로 조정했고, 다시 올 4월로 연기한 만큼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 선거를 지나치게 의식하다가 꼭 해야 할 개혁정책이 실종되면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들은 또 "지난해 12월 국민연금 실시시기를 확정할 때 합의한 한나라당이 이제 반대여론에 편승해 연기론을 내놓고 있다" 며 한나라당을 성토하기도 했다.

金장관은 난상토론이 끝나자 "이 제도를 실시하기로 한 상태에서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경우 국민의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 면서 "예정대로 실시하면서 보완방안을 마련하겠다" 고 답변했다.

국민회의측의 우려에 반해 청와대측의 입장은 확고하다.

국민의 정부의 사회복지 혁신정책의 기본 축을 흔들 수 없다는 것. 핵심관계자는 "이번에 실시하지 않으면 사실상 영원히 불가능해 사회복지 후진국을 면치 못하게 될 것" 이라고 했다.

전영기.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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