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국인 마마'장례…흑인들 애도 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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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LA) 시내 대표적 흑인 거주지역인 사우스 센트럴의 세인트 브리지드 성당. 지역사회장으로 치러진 베네스 마켓의 여주인 교포 홍정복 (52) 씨의 장례식에는 주로 흑인.히스패닉계 등 피부색을 초월한 조문객 3백여명이 모여 주위를 의아하게 했다.

지난 15년간 홍씨를 '마마' 라고 불러온 인근 흑인 주민들은 이곳 주민도 아닌 홍씨의 유가족들에게 간청, 이곳에서 장례를 치르게 했다. 홍씨의 관은 단골손님이던 LA카운티 운수국 소속 버스운전기사 6명이 정복을 입고 운구했다.

조문객들은 홍씨의 다정한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기저귀와 우유를 살 돈이 없는 젊은 어머니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싸주며 "돈은 다음에 내세요" 라고 말하던 푸근한 마음씨. 맥주 깡통 몇개를 훔쳐 달아나던 청년의 뒤에서 "넘어질라" 며 걱정하던 모습.

생계보조비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면서 술을 사는 남자의 집에 전화를 걸어 부인이 직접 돈을 받아가도록 챙기는 등 '마마' 를 모르는 인근 주민이 없을 정도. 홍씨의 가게는 LA폭동 당시에도 흑인 주민들이 번갈아 가며 지켜준 덕에 조금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홍씨의 가게 앞에는 꽃다발.촛불.성경책.추모 메시지들이 가득 쌓였다. '마마, 우리가 살인자를 찾아 대가를 치르게 할게요' 라는 쪽지도 눈에 띄었다.

마크 리들리 토머스 시의원은 추도사에서 "이 장례식은 한.흑간 과거의 일들을 씻고 앞으로 지향해야 할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 것" 이라고 말했다. LA 타임스.뉴욕 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도 이 장례식 관련 기사를 크게 실었다.

LA지사 =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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