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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병용 부처마다 입장달라 조정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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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9일 문화관광부의 전격적인 한자 병용 방침은 관련 정부부처간에도 입장이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

어문정책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한자 병용에 관한 행정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공문서 관리를 총괄하는 행정자치부는 공문서의 한자 병용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또 건설교통부는 도로표지판에 한자를 포함시키는 방안에 대해 문화관광부 등과 협의에 나섰다.

반면 교육부는 당장 한문교육체계나 교과서 양식의 기본틀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문화관광부 = 10일 박문석 문화정책국장은 "한자 병용의 필요성은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 이라며 "이미 지난 50년간 찬반 양론과 중도론 등 가능한 모든 여론이 수렴된 상태이므로 남은 것은 정책적 결정 뿐" 이라고 말했다.

朴국장은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 정신에 따라 "필요시 한자를 병용하겠다는 것이지 한자의 무리한 사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달라" 고 말했다.

◇ 행정자치부 = 행정자치부 한 당국자는 "지난 70년 공문서를 한글로만 작성토록 한 국무총리 훈령이 30년 가까이 시행돼온 상황에서 갑자기 공문서에 한자를 병용하는 문제는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안" 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공문서 한자 병용을 위해서는 현행 사무관리규정을 개정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규정개정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며 "정보화 시대를 맞아 행정업무가 컴퓨터를 통해 이뤄지고 있고 한자 병용의 경우 행정능률화에도 역행할 우려가 있다" 고 보고 있다.

행자부는 특히 지난 81년 이후 정부방침에 따라 행정부처는 물론 법원도 공문서에 표기되는 어려운 한자 용어들을 보다 쉬운 한글로 바꾸는 작업을 벌여온 점에 비춰 한자병행 방안은 이에 역행한다는 입장이다.

◇ 건설교통부 = 도로표지판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에 대해 교통안전공단.건설기술연구원 등 전문기관의 의견을 수렴중이다.

정임천 건교부 수송정책실장은 "차량의 고속화.도로의 다차선화 등 교통환경이 복잡해짐에 따라 표지판에 자국어 등 3개 국어를 표기한 나라는 세계에 한 곳도 없다" 면서 "다만 한글로 표기해 혼란이 빚어지는 장소나 관광지 등에 대해서는 한자 병기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고 말했다.

건교부는 지난 97년 도로표지규칙을 개정하면서 아시아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일부 관광지에 대해 표지판 밑에 보조표지판을 설치, 한자를 병기할 수 있도록 규정해두고 있다.

◇ 교육부 = 중.고교에서 한문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다 각종 정부문서에서도 한문을 쓸 수 있는 길이 이미 열려 있어 당장 한문교육체제.교과서.공문서 양식의 기본틀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고교 국어.국사.사회과목 등의 교과서에서는 이미 국한문을 병용하고 있으며 7차 교육과정 (중 2001년, 고 2002년)에서도 한문이 선택형 수준별 교육과정으로 도입돼 학생들은 기초과정인 '한문' 과 심화과정인 '한문고전' 을 선택해 배울 수 있게 돼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다만 지난 72년 제정된 교육용 한자 1천8백자의 일부가 현실 생활과 차이가 있다는 문화관광부의 지적에 따라 문화관광부 국어연구소의 보고서 검토와 실태조사를 거쳐 조정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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