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실업대책, 벤처지원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말 현재 실업률이 7.9%, 실업자는 1백66만명으로 사상 최대의 고용불안 상황이 예고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결정하기 바로 전인 97년 10월말의 45만명보다 무려 4배로 증가한 수치다.

1년여만에 1백20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오게 됐다는 것은 몹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1분기가 지나면 약 42만명의 대학졸업자가 그대로 실업인구로 가산될 전망이니 말로만 듣던 2백만 실업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실업률 또한 8.5%로 뛰어오를 것이 예상된다.

실업자의 분포를 보면 특히 눈에 띄게 늘어난 분야가 건설근로자 (3명중 1명 실직).사무직.단순노무직이며 반면 오히려 고용이 증가된 업종은 전문직.기술직이다.

우리는 이러한 데이터를 보면서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이 수직형인 단순직에서 수평형인 차별화된 모험심 (venture mind) 을 갖춘 창조적인 아이디어의 전문기술직으로 서서히 탈바꿈하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앞으로 국제화.정보화에 의한 지식산업과 아이디어 산업이 제3차.4차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날이 곧 오게 될 것이 예상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실업문제 해결방안도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실업급여의 연장제를 확대하고 기업의 고용유지 및 채용장려금의 지원규모를 늘리며 1분기중 35만명을 공공근로사업에 투입하는 등 의욕적인 실업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이고 근시안적.대증요법적, 그리고 즉흥적인 정책대응으로는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

좀더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요망된다.

미국은 한창 불황의 한파에 휩싸여 있던 92년 정부가 나서 적극적이며 과감하고도 철저한 기업의 구조조정을 강행함과 아울러 모험자본 (venture capital) 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많은 전문직들이 불안한 기업을 떠나 가치창조형 창업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무려 1천만명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 경제를 다시 살리는 원동력이 됐다.

정부에서는 올해 하반기 중 경기회복을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 경제연구소나 경제학자들 중에는 실업 증가와 그로 인한 노사관계 불안정.개인소득의 감소.설비투자의 부진.세계경제의 악화에 따른 수출둔화.구조조정 미흡 등으로 올해안에 경기회복을 낙관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구나 금융기관들이 지난해 이후 대기업 위주의 관치금융을 오히려 증가시키면서도 담보력 부족.성공가능성 불투명을 이유로 기술력이 뛰어나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우수한 중소기업이나 창업자들에게 벤처캐피털 공여를 꺼리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개인에게는 대기업보다 엄청난 고금리를 적용해 예대 (預貸) 마진을 97년 6월 1.8%에서 98년말 4.5%로 올려놓는 식의 편파적인 금융관행을 고집, 전망있는 벤처기업의 발전을 막고 있다.

우리도 선진국의 금융기법을 하루 빨리 도입해 담보위주의 금융관행을 신용위주로 적극 전환해 과학적이고 계량적인 기업심사기준을 마련함으로써 기술력 못지않게 창업자 또는 중소기업인의 성실성.진취적인 기업마인드.창의성 등을 깊이 분석 조사해 담보력이 부족하더라도 과감히 벤처캐피털을 지원해주는 기업체 평점제를 선진국형으로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모험자본을 적극 권장하기 위해서는 '벤처캐피털 육성 특별법' 을 제정, 특별기금을 많이 조성해 각 금융기관들에 중소기업청의 관장아래 배정 관리토록 하며, 유망창업자의 신규발굴과 지원실적을 의무화해 실적에 따라 금융기관별로 차별적인 특혜 또는 제재를 가하는 것도 벤처기업 육성의 한 방안이다.

실업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때모험자본의 육성을 가속함으로써 효율적이고 실질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실업대책이 긴요한 것이다.

실업급여나 연장하는 식의 소극적이고 임시적인 실업대책보다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좀더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방안인 벤처캐피털의 적극 지원이 효과적이다.

모험자본의 이자는 창업 5년이내는 무이자로 하고 성공시에는 기업공개에 의한 이익배당 형식으로 그동안의 이자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해 국가.금융기관.기업주가 공동참여하는 문자 그대로 주식회사의 역할을 다하도록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기관들이 전망있고 기술력.아이디어 창출력이 있는 기업을 적극 개발, 지원하는 첨단적인 금융기법을 개발하는 게 급선무다.

이광수 대천실업 전무.경제학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