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악극 '번지없는 주막' 손님 북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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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내년이면 창단 40주년을 맞는 실험극장이 옛 명성을 되찾겠다며 지난달 무대에 올린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이 당초 약속한 공연기한보다 3주 앞선 지난 7일 막을 내렸다.

중견배우 강태기씨의 열연은 호평받았지만 관객들의 외면으로 극장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면 많은 연극인들이 유치하게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다며 비웃는 악극에는 올해도 역시 관객들의 발길이 줄어들줄 몰랐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난달 31일 시작한 극단 가교 (대표 최주봉) 의 악극 '번지없는 주막' (21일까지) 은 첫날부터 매진을 기록하더니 매일 2회 공연 (월요일 쉼) 내내 2천여 객석이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가득 메워지고 있다.

초대권이 남발되는 다른 연극과 달리 평균 90%가 유료관객으로 채워지고 대학로에서는 죽은 시간대로 간주되는 낮 공연에 오히려 더 많은 관객들이 몰린다.

이쯤 되면 악극의 성공을 이제 단순히 장.노년층의 싸구려 향수 (鄕愁) 쯤으로 낮게 평가하기 보다 좀더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연극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새로운 관객층 개발이라는 면에서나, 또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관객과의 상호소통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공연장과는 생전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을 IMF가 무색하게 콧대 높은 예술의전당으로 끌어들이는 힘, 그리고 유치하다지만 마음 속을 파고들어 할머니들의 눈물을 훔쳐내고야마는 공감대 형성은 연극인들이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다.

한가지 더. 바로 윤문식.최주봉.김성녀 등 배우들의 탄탄한 실력이다. 기본기도 갖추지 못한 연수생들을 제작비 절감이라는 이유로 무대에 세우는 것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극단이 점점 늘고 있는 요즘, 관객들을 능수능란하게 웃기고 울리는 진짜 '광대들' 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티켓값 생각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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