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도 선거 전략도 오자와의 머리에서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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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67) 민주당 대표대행은 8·30 총선 승리의 사실상 주역이다. 비서의 불법 선거자금 사건으로 5월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공천에서 선거전략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여전히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끄는 1인자다. 선거가 끝난 지금, 총리에 오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보다 오자와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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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5월 24일 오자와 사에키(佐重喜) 전 건설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출생 때부터 정치인으로 길러졌다. 사에키는 이와테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이치(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나중에 성장해 정치를 할 경우 유권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출생신고를 한 어머니가 “이치는 너무 가벼운 것 같다”며 뒤에 ‘로(郞)’라는 글자 하나를 덧붙여 이치로가 됐다고 한다. 모나지 않은 성품을 물려받은 그는 아버지로부터 이상 정치를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도쿄로 올라와 공립명문 고이시카와(小石川)고교, 게이오(慶應)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 오자와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다. 69년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오자와는 심부전으로 세상을 뜬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당시 아사히(朝日)신문 지방판의 후보자 소개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난 어려서부터 선거형 인간으로 길러졌다.”

이런 그가 ‘정치공학의 달인’으로 거듭 태어난 데는 또 한 사람의 ‘아버지’가 있었다. 70년대 자민당을 주름잡던 금권정치의 대명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다. 다나카는 “이치로는 특별한 면이 있다”며 항상 곁에 두고 자신이 체득한 현실정치 노하우를 전수했다. 강력한 리더십과 정국을 읽는 감각은 다나카로부터 배운 것이다. 다나카의 총애를 받은 오자와는 승승장구했고, 49세의 나이에 사상 최연소 자민당 간사장에 올라 ‘자민당 황태자’란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당내 파벌 싸움 끝에 그는 93년 자파 의원 30여 명을 데리고 탈당해 신당을 만들면서 자민당 파괴에 앞장섰다. 8개의 반자민당파가 연합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細川護熙) 총리 연립정권이 탄생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그가 가는 곳엔 반드시 정계 개편이 있었다. 94년 신진당 간사장, 98년 자유당 당수를 거쳐 2003년 민주당에 입당하기까지 그는 잇따라 정당을 세웠다 무너뜨렸다. 이 때문에 자칭 ‘보수 개혁정치가’보다는 ‘권력의 화신’ ‘어둠의 장군’이란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닌다.

그의 국가관은 일본이 패전국이란 멍에에서 벗어나 보통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도 군대를 보유하고 유엔 주도 평화 유지 활동에 참가해야 한다는 ‘보통 국가론’은 평화 헌법 개정 논의를 촉발시켜 일본 우파의 군사 강대국론을 더욱 부추겼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민당과 달리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아시아 외교를 중시한다. 주변국과의 갈등 요소인 야스쿠니(靖國)신사 문제에 대해서도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을 분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민당 체제에서 깊게 뿌리내린 관료주의 사회 타파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2005년 참의원 선거를 민주당 승리로 이끌면서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차기 총리 1순위에 올랐다. 그러다 비서의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에 책임을 지고 지난 5월 자신을 끝까지 지지해준 하토야마 유키오에게 대표직을 물려줬지만, 여전히 ‘상왕’의 입장에서 이번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오자와는 과거 다나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발굴한 신진후보들을 선거자금 조달부터 기업·단체들과의 연대에 이르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번 선거로 그가 이끄는 그룹은 1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벌써부터 “하토야마 내각은 오자와의 사람으로 채워질 것” “오자와가 실질적으로 당을 이끌 것”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돌고 있다. 총리 하토야마-실세 오자와의 2중 권력 체제는 향후 정국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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