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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감옥에서 온 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야향목 (夜香木) 향기가 복도를 가득 채우다 못해 '시찰구' 를 통해 밀려 들어옵니다. 전임 소장님이 그 향기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성질을 지녔다면서 다른 곳으로 가실 때 방마다 하나씩 야향목 화분을 넣어 주었지요…. "

지난해 9월 어느 날 이렇게 정감있는 어투로 시작하는 편지를 받았다.

이따금씩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편지를 받는지라 겉봉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무심코 봉투를 뜯었던 터였다.

그러나 '시찰구' 니 '전임 소장님' 이니 하는 단어와 마주치고는 짚이는 게 있어서 그제서야 겉봉을 살펴봤다.

'강용주 드림 경북안동시 안동우체국 사서함 171호 - 1313번' 보내는 이 자리엔 이렇게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필자는 편지를 받기 바로 얼마전인 98년 9월 4일자 중앙일보에 두 '딸각발이' 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법관으로서의 청렴과 원칙을 철저히 지켜 대법관이 되기까지 재산이라곤 시가 6천만원짜리 25평 아파트와 예금 1천75만원이 전부인 조무제 (趙武濟) 대법관과 박노해.황석영.백태웅도 쓰고 나오는 판에 양심의 자유에 반 (反) 한다며 끝내 준법서약서를 내지 않아 가석방이 보류된 최연소 장기수를 소재로 한 것이었다.

현실적 이해에 관계없이 원칙이나 신념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사람을 찾기 힘든 오늘날의 현실에서 두 사람의 자세는 돋보인다는 것이 골자였다.

편지를 보낸 강용주 (36) 씨가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4년째 복역하고 있는 그 최연소 장기수였다.

강씨는 자신이 조무제 대법관과 함께 '딸각발이' 로 거론될만한 사람이 못되며 칼럼에서 한 평가가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어색' 하다고 겸손해했다.

그러나 서약서를 쓰지 않겠다는 의지만은 신문기사에서 읽은 것 이상으로 확고부동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지 사회 일부에서 오해하듯이 어떤 신념이나 사상을 위해 양심지키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썼다.

양심의 자유는 어떤 이유로도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이기 때문에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부자유를 담보로 세상의 자유를 넓히고 다져나갈 각오가 돼 있다' 고 다짐했다.

그의 편지는 내내 내 머리와 가슴을 점령하고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는 고등학생으로서 광주민주화운동 대열에 참여하게 됐다.

대학에 입학해서부터는 이른바 운동권이었다.

그런 과정을 살펴보느라면 그가 왜 공안사건에 말려들었는가가 어렴풋이 짐작이 됐다.

그러나 자료를 뒤적여 보니 그는 재판과정에서부터 이제까지 일관되게 자신에 관한 혐의를 부인해 왔다.

수사기관의 폭력과 고문에 의해 엄청난 범죄로 조작됐다는 주장이었다.

기본적인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 외에 그가 끝끝내 준법서약서를 쓸 수 없었던 또 한가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범죄사실 자체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만약 '전향' 을 하거나 준법서약서를 내면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되니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과연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끝내 답장은 숙제로 남았다.

차라리 그와 똑같이 부자유스런 몸이었다면 14년째 아들의 출옥을 기다리고 있는 노모를 생각해서라도 혐의를 인정하건, 안 하건간에 서약서 한장 쓰고 그만 나오라고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말은 그의 표현대로 10여년을 '상처입은 짐승처럼 돼 신음' 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지켜오고 있는 그에게 너무도 큰 상처이자 모욕이 되지는 않을까. 반면 등 따습고 배부른 처지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뜻을 지켜나가시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사면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는 한 이번에도 석방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준법서약서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정부의 시각인 것이다.

또 우리 사회에는 비록 강씨가 강력히 자신의 범죄사실을 부인하고는 있지만 일단 공안사범의 낙인이 찍힌 사람을 가석방하는데 대한 저항감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강씨 관련 사건은 85년도 사건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설사 강씨의 무죄주장이 틀리더라도 우리 사회도 이제는 지난 1929년 미국의 유명한 대법관이었던 올리버 웬델홈스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을 받아들일만큼 너그러워지고 성숙해질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사상의 자유는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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