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선댄스영화제 어떤 작품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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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펄프 픽션' 의 쿠엔틴 타란티노는 한 때 비디오가게 점원이었다. 영화적 열정이 들끓던 이 '미완의 대기' 를 발견한 것이 바로 선댄스영화제.

'섹스, 거짓말, 비디오테이프' 의 스티븐 소더버그, '엘 마리아치' 의 로베르트 로드리게즈의 등장도 이 영화제를 통해서였다. 이 때문에 선댄스영화제는 세계 독립영화의 '어머니' 로 불린다.

거칠대로 거친 열혈청춘들을 따스한 품속으로 받아들여 거장 (巨匠) 의 싹을 틔우게 하는 곳. 올해도 어김없이 제2, 제3의 타란티노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개최지인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 몰려들었다.

78년 첫 출범한 이래 (당시는 US필름페스티벌) 90년대 들어 부쩍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이 영화제엔 해마다 신청작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영화제측이 규모를 줄이려 '몸부림' 치고 있을 정도.

올해 출품 신청작 2천5백편 중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경쟁부문에 출품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32편을 포함 모두 114편. 올해는 특히 다큐멘터리 부문이 강세. 최근 들어 '좋은 다큐멘터리가 선댄스에 몰린다' 는 세간의 평가를 다시금 확인케 했다.

다큐멘터리의 경향도 많은 변화를 보였다.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소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 결혼생활 2년만에 50대 남편이 암 선고를 받자 투병생활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부부가 함께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미셸 르브런 감독 (아내) 의 '죽음 : 러브스토리' 가 주목을 받는가 하면, 베테랑 다큐 작가인 덕 블럭 감독은 인터넷에 열광하는 현대사회를 '홈 페이지' 라는 작품에 녹였다.

다큐 가운데 최고 화제작은 미국 고피 루이스의 '섹스 : 애너벨 청 스토리' .10시간 쉬지 않고 2백51명의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 기록에 도전한 싱가포르 여성의 이야기다.

이밖에도 앨런과 앨버트 휴즈 형제 감독의 '어메리칸 핌프 (포주)' 는 핌프에 관한 모든 것을 매우 현란하고도 감각적인 영상에 담아냈다.

여성감독들의 영화나 페미니즘 영화들도 주목받았다. 낸시 사보카 감독은 '24시 여성' 을 통해 출산과 육아문제로 고통받는 현대 직업여성의 초상을 섬세하게 그려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편 올 선댄스영화제에는 '보물' 을 캐려고 할리우드에서 찾아온 메이저 스튜디오 관계자와 배급업자들로 붐벼 '상업화' 의 거센 파고를 실감. 그래서인지 독립영화의 정신마저 할리우드에 팔아버리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도 느껴진다.

그러나 선댄스 인스티튜트의 회장인 로버트 레드포드는 단호하다. "선댄스에 시장이 형성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선댄스가 시장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시장이 영화제작자들에게 이익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파크시티 =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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