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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75> 헌법재판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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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처를 충남 연기·공주 일대로 옮기자는 ‘수도 이전 논란’을 기억하시나요? 노무현 정부가 취임 초기 신행정수도 이전을 야심차게 추진하다가 헌법재판소에 발목을 잡힌 것입니다. 2004년 10월 헌재가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모든 계획이 전면 중단됐습니다. 헌재는 이렇듯 국가적 대사는 물론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결정들을 내려왔습니다. 헌재는 법원과는 별도의 기관으로 국가 공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등을 판단하는 곳입니다. 국가기관 간의 다툼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헌재의 결정은 정치·사회적인 파장이 커 헌법재판관 가운데 일부를 법조인 이외의 사람들로 임명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성우 기자

헌법재판소는 1988년 9월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태어났다. 독재 정권 하에서의 경험 때문에 기존의 사법기관 이외에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판단을 하는 곳을 따로 두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는 입법부(국회), 행정부(대통령), 사법부(대법원)와 대등한 위치에 있다.

제2공화국 때인 1961년에도 헌법재판소 설립을 추진했으나 5·16으로 무산됐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대법원에서 헌법재판을 했으나 1972년 유신 이후에는 단 한 건의 위헌법률 심판도 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를 따로 두고 있는 나라로는 독일·오스트리아가 대표적이다. 프랑코 장군의 독재 시기를 거친 스페인, 오랜 기간 흑백갈등을 겪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공산주의의 폐해를 본 일부 동유럽 국가도 별도의 헌법재판소가 있다. 반면 미국과 일본에는 최고법원이 하나뿐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는 이강국 소장을 포함해 9명의 헌법재판관이 있다. 헌법재판관은 국회·대통령·대법원장이 3명씩 선출·지명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기가 2013년 1월까지인 이강국 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명·임명했다.

헌법재판소의 기능 가운데 일반 국민의 삶과 가장 밀접한 것은 헌법소원심판이다.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不)행사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침해되는 경우 국민 누구나 헌재에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 헌재가 헌법소원을 받아들이면 공권력 행사가 취소된다. 수도 이전을 위헌으로 본 사례나 군 가산점이 남녀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사례 등이 있다.

법원에서 사건이 진행 중인데 적용될 법률이 위헌이라고 여겨지면 재판부 직권 또는 소송 당사자의 신청으로 헌재에 위헌제청을 할 수 있다. 위헌법률심판에서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하면 그 법조항은 효력을 상실하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경우 국회가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영화 상영 전에 심의를 받도록 했던 영화법 규정에 대한 위헌 결정, 동성동본 금혼규정에 대한 위헌 결정 등이 이런 사례다.

이 밖에 최근 국회의 미디어법 통과를 둘러싼 권한쟁의심판,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알려진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등도 헌재의 주요 기능이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권한 다툼에 대한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은 2007년 “대통령이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과 관련해 회원국들과의 합의문이 아닌 양허표 개정안에 대해서만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를 거친 것은 국회의 비준 동의권과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재판관 7명의 다수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다수결의 결과에 반대하는 소수 국회의원에게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다수결 원리와 의회주의의 본질에 어긋나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국회 안에서 행사되고 침해될 뿐 다른 국가기관과의 관계에서는 침해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탄핵심판은 대통령, 국무총리, 행정 각부의 장, 법관, 감사원장 등의 고위직 공무원이 직무집행을 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 국회에서 탄핵소추의 발의와 의결을 하고 헌재에서 파면 결정을 하는 제도다. 탄핵소추는 국회만 할 수 있다. 헌재가 생긴 이래 탄핵심판 사건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이 유일하다. 이 사건에서 헌재는 “대통령이 선거에 임박해 특정 정당 지지 발언을 한 것과 현행 선거법을 ‘관권 시대의 유물’로 폄훼한 것,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것은 법률과 헌법수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것이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경우는 아니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정부의 제소에 따라 헌재가 그 정당의 해산을 명하는 제도다. 정부만 정당해산청구를 할 수 있고, 일반 국민은 정부에 정당해산청구를 해달라는 청원만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 적은 한번도 없다. 이 제도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려는 정당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법 해석 넘어 역사의 향방 가늠할 척도

헌재는 법률적인 판단만을 하는 대법원과 달리 정치·사회적인 파장을 고려해야 하는 곳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BBK 특검법 위헌심판 등 헌재의 결정은 단순한 법 해석을 넘어 역사의 향방을 가늠하기도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합헌 결정, 종합부동산세 세대별 합산 규정에 대한 위헌 결정, 태아성별 고지 금지 규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등도 모두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헌재는 변천하는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간통죄 위헌 여부에 대해 4명의 재판관이 위헌, 1명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합헌이라고 판단한 재판관 4명보다 많았으나 정족수 6명에 못 미쳐 결과적으로는 합헌 결정이 나왔다. 하지만 1990년에 6:3 합헌 결정을 내렸고, 2001년에는 8:1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폐지 여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점 등을 보면 간통죄에 점차 관대해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이강국 헌재 소장이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3명 정도는 법조인이 아닌 사람 가운데서 나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얘기다. 현재 헌법재판관 가운데 6명은 판사 출신이고, 1명은 검사 출신이며, 나머지 2명은 판사 경력이 있는 변호사 출신이다. 기본적인 법 지식이 있어야 헌법적 판단도 할 것 아니냐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지만 충분히 고려할 만한 아이디어라는 게 중론이다. 현 재판관 가운데서는 조대현 재판관이 소수의견을 많이 내는 것으로 유명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낸 송두환 재판관은 진보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김희옥 재판관은 검찰 출신이고, 김종대 재판관은 주로 부산·경남 지역에서만 판사 생활을 한 지역법관 출신이다.



☞각하(却下)·기각(棄却)·인용(認容)

헌법소원 또는 소송을 통한 청구를 헌재나 법원이 받아들이는 것을 인용,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기각이라고 한다. 헌법소원이나 소송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청구 내용에 대한 검토 없이 사건을 끝내는 것을 각하라고 한다.

한정위헌·한정합헌·헌법불합치

한정위헌은 헌법소원이나 위헌제청된 법률의 일부분이 모호해 그 부분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위헌이 될 수도 있을 경우 내리는 결정이다. 한정합헌은 다소 위헌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헌법정신에 부합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합헌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합헌 추정의 원칙’에 따른 결정이다. 두 경우 모두 합헌 결정처럼 법률의 효력이 그대로 유지된다. 이에 반해 헌법불합치 결정은 사실상 위헌이라는 뜻이다. 즉시 해당 법률을 무효화시키면 사회적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국회가 법을 고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것이다.

헌법소원 청구는 …

‘기본권 침해’ 마지막 구제 절차
개인·법인·외국인도 청구 가능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헌법소원 청구를 할 수 있다. 회사와 같은 법인도 할 수 있다. 미성년자도 할 수 있지만 부모 등 법정대리인이 대신해야 한다. 헌법이 내·외국인을 구별하지 않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외국인도 청구할 수 있다.

헌법소원은 기본권이 침해당한 것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기본권의 침해가 있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내야 한다. 또 법원이나 행정청 등을 통해 모든 구제절차가 끝난 뒤 마지막으로 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 경우 다른 구제절차의 최종 결정을 통보받은 지 30일 이내에 내면 된다.

법령이 시행된 뒤에야 그 법령에 해당하는 사유가 생겨 기본권이 침해됐을 때는 시행일이 아니라 그 사유가 발생한 것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그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하면 된다.

헌법소원이 접수되면 3명의 재판관으로 이뤄진 지정재판부에서 헌법소원이 적합한지를 심사한다. 현재 1부는 이강국·민형기·이동흡 재판관, 2부는 조대현·김희옥·목영준 재판관, 3부는 이공현·김종대·송두환 재판관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법률에 의한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를 비롯해 ▶청구기간이 지난 경우 ▶변호인 선임이 되지 않은 경우 ▶기타 부적법한 경우에는 지정재판부가 헌법소원을 각하시킨다.

지정재판부가 헌법소원이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하면 전원재판부로 넘긴다. 전원재판부는 각하·기각·인용 등의 결정을 내리는데 인용 결정의 유형으로는 위헌,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한정합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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