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인수나선 국제컨소시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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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그간 동국제강을 빼곤 나라 안팎에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보철강 입찰에 국제 컨소시엄이 적극 나선 것은 동국제강이 내건 인수조건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보의 내용이 워낙 엉망이라 누가 가져가든 관심도 별로 없었지만 동국제강이 내걸었다는 조건을 보고 "이건 너무 싸다" 는 생각이 든 것이 컨소시엄 구성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이다.

서드 애버뉴 밸류 펀드의 한 핵심 관계자는 " (동국제강이 제시한 대로) 1조7백여억원을 7년 거치 14년 분할상환한다면 연리 9~10%의 금리를 적용해도 현가 (現價) 는 고작 2천5백억~3천억원인데 그렇다면 그 이상으로 우리가 들어가도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 고 말했다.

서드 애버뉴는 금세 네이버스 캐피털.칼 막스 스트래티직 인베스트먼트 등을 대표 투자가로 끌어넣었고 바로 뉴욕 뱅커스 트러스트 울펀슨사에 의향서를 띄워 실사 (實査) 일정을 잡는 등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컨소시엄 구성 주선에서 실사 일정을 잡기까지 겨우 보름 남짓 걸린 셈이다.

이번 컨소시엄 구성은 뉴욕과 한국에서 투자금융가로 활동하는 권호성 (權浩成) 중후 (中厚) 산업 사장이 서드 애버뉴의 마틴 휘트먼 회장과 함께 주선했다.

휘트먼 회장은 權사장의 예일대 경영대학원 스승이자 월가에서 함께 투자 파트너로 뛴 사이로 월가에서의 영향력이 크다.

權사장도 이번 컨소시엄의 '상당 부분' 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연합철강 창업주이자 전 회장이며 지금도 연철의 대주주 (지분율 약 40%) 인 권철현 (權哲鉉) 씨의 장남. 서드 애버뉴는 지난해까지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로도 활동했던 휘트먼이 이끄는 월가의 투자 펀드. 지난해말 현재 총자산은 약 17억달러로 지난 3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복리 (複利) 로 16.19%를 기록한 월가의 우량 펀드다.

벤처 캐피털로도 유명한 칼 막스는 93년 이후에만 2억3천5백만달러를 47건에 투자해 연평균 28%의 수익률을 올린 매우 공격적인 회사다.

네이버스 캐피털은 미국 굴지의 석유시추회사인 네이버스 인더스트리의 투자금융회사. 이들이 한꺼번에 힘을 모아 나선 것을 보면 한보 매각은 이제 분명히 새로운 전기 (轉機) 를 맞은 셈이다.

마침 S&P도 한국의 국가신용도 평가를 다시 올린 참이라 외국의 대한 (對韓) 투자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고 있다.

한국의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오던 한.미 양국 관계에 비춰봐도 '네이버스 - 서드 애버뉴' 컨소시엄의 '입질' 은 일단 모양새가 좋다.

동국제강도 한보에 잔뜩 관심을 보이는 터라 다른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어 실사 결과와 최종 결정은 두고봐야 하겠지만 나중에 미 의회.행정부.업계가 "철강산업 구조조정에 한국 정부가 개입했다" 고 물고늘어질 여지는 벌써 많이 없어진 까닭이다.

곧 실사에 들어갈 이들은 현재 일본.유럽의 투자가들과도 컨소시엄 참여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어 이번 컨소시엄이 결국 미국계가 중심이 된 다국적 집합체가 되리라는 전망은 그런 그림을 더욱 좋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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