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직동팀'의 불법 계좌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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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영삼 (金泳三) 정부 시절 청와대 하명 (下命) 사항을 주로 처리해 온 이른바 '사직동팀' 이 불법 계좌추적을 일삼아 온 것으로 밝혀졌다.

'사직동팀' 은 30여명의 경찰인력으로 구성된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의 별칭으로 청와대 부근 사직동에서 따로 근무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직제상 경찰조직이지만 경찰의 지휘.감독을 전혀 받지 않고 청와대 해당비서관의 지휘 아래 특수수사만 하는 별동대로 알려져 있다.

'사직동팀' 의 존재는 어렴풋이 알려져 있었지만 활동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말썽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은행감독원 간부였던 현 금융감독원 김상우 (金相宇) 기획조정국장이 경제청문회에서 "사직동팀에서 주는 이름없는 계좌번호나 주민등록번호, 은행 점포명을 토대로 영장도 받지 않고 계좌추적을 벌였다" 고 증언한 것이다.

그가 97년 대선과정에서 김대중 (金大中) 당시 국민회의 총재의 계좌를 추적한 일도 시인함으로써 쟁점이 됐던 金총재 비자금 6백70억원 사건의 진원지가 밝혀진 셈이다.

권력의 힘을 동원해 불법으로 예금계좌를 뒤지는 것은 명백한 기본권 침해다.

전화의 불법 도청.감청이나 마찬가지인 범죄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민정부를 자처하면서 청와대에서 이같은 범죄행위를 저질러 왔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사직동팀은 만든 것 자체가 문제였다.

대통령비서관이 개인비리에 대한 수사.조사권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고 가져서도 안되는 것이다.

대통령 주변 친인척 관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지만 점점 정치적 목적에 동원되면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권력기구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법률적 근거도 희박했고 꼭 필요하다면 청와대 공식기구로 편제화했어야 옳았다.

비공식으로 음지에서 숨어서 일하다 보니 불법이나 비리가 많았던 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청와대 특명반' 이라면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기업들까지 무소불위 (無所不爲) 의 존재로 인식되지 않았는가.

오죽했으면 청와대 특명반을 사칭한 사기꾼들이 들끓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폐해를 짐작할 수 있다.

사직동팀이 상당기간 활동해 왔으니 불법.비리가 단지 불법 계좌추적뿐이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번에 잘못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실체와 그동안의 행적을 정확히 가려내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새 정부 출범 후 1년이 다된 지금까지 사직동팀이 그대로 가동되고 있다는 것은 난센스다.

하루 빨리 이를 해체해 과거 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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