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검은 얼굴 자유의 여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뉴욕항 입구의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프랑스 국민이 기증한 것이다.

자유의 여신의 모습은 1789년 프랑스혁명의 소용돌이 가운데 민중의 마음 속에서 자연스레 빚어져 나왔다.

전제정치에 억압받는 민중의 입장을 여성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며, 혁명의 결과물인 공화국 (rpublique) 이 여성명사이기 때문에 이 모습이 바로 공화국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자유를 함께 누리는 나라와 우호의 상징으로 이 선물을 보낸 것이다.

들라크루아의 1830년 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에서 혁명의 대열을 이끄는 여성이 자유의 여신의 전형적 모습이며, 자유의 여신상의 모델이기도 하다.

1848년 프랑스의 상징으로 공포돼 '마리안느'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이 여성이 이 그림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백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난 주 파리 외곽의 프러멩빌이란 작은 마을에서는 흑인의 모습을 한 마리안느 석상의 제막식이 있었다.

프랑스의 모든 마을에서는 자기 식으로 마리안느의 모습을 해석, 초상이나 조각을 모시는 전통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클로드 발레라는 조각가가 인근에서 나온 석재로 제작해 '소말리아의 줌바' 라 제목붙인 작품을 기증받아 마을의 마리안느로 채택한 것이다.

"프랑스는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된 나라며 '프랑스인' 이란 종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이방인과 다양성을 환영하는 우리 마을의 뜻을 나타내려 '검은 마리안느' 를 채택했다" 고 모리스 마이예 촌장은 설명한다.

지난해 노예해방 1백50주년을 맞아 이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영국에는 인도인, 독일에는 터키인, 프랑스에는 아랍인이 많이 산다.

과거 식민지에서 값싼 노동력을 들여와 천하고 힘든 일을 시키던 전통에서 이어진 현상이며, 이들은 아직도 사회 하층부에 많이 분포해 있다.

우리의 재일동포와도 비슷한 처지다.

이들 이민집단을 정치적 공격의 표적으로 삼는 극우파가 각국에서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 5백명의 마을이 치켜든 조그마한 깃발이 많은 사람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외국인이 적어 인종주의 문제를 의식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근래 외국인 노동자가 늘며 반성할 일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를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면서 그 수십배가 되는 우리 해외동포들이 제대로 대접받을 것을 어떻게 바랄 수 있겠는가.

농촌마을인 프러멩빌에는 백인 아닌 집이 두 가구뿐이라 한다.

그럼에도 세계를 향해, 인류를 향해 마음을 여는 그 자세가 아름답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