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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 흥행 거품투성이…순수 유료관객 10%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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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12월 9일 T무용단 창단 18주년 기념공연이 열린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 6백석이 넘는 공연장은 'IMF 문화혹한기' 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붐볐다.

2회 공연에 관람객 1천67명, 유료.초대관객 비율도 7대3으로 겉보기엔 성공이었다.

그러나 이 공연은 무용단원들이 40만원어치씩 티켓을 할당받아 가족.친지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관객을 동원한 '집안잔치' 였다.

현대무용가 K씨 (36) .국내 간판급 남성무용수인 그는 18년 동안 따랐던 H대 K교수와 최근 결별했다.

교수 자리를 바라고 충심으로 스승을 도왔지만 일단 밉보이자 다른 무용가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등 이른바 '팽 (烹)' 당한 것. 그는 "독립된 무용단을 만들었으나 평소 따르던 후배들조차 스승 눈치 보느라 단원으로 오지 않는다" 고 말했다.

한국 공연예술계의 왜곡현상이 심각하다.

예술 수용자 (受容者) 의 개발을 외면한 채 동원된 관중에 안주하는가 하면, 특정인 중심의 독과점적 계보를 형성해 젊은 예술가들의 순수한 의지를 좌절시키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음악계의 경우 1천만~2천만원씩 들여 치르는 귀국독주회나 개인발표회, 경력관리를 위해 출연자들이 도리어 출연금을 내는 대형 오페라 등이 주종. 특히 독주회는 경제난으로 유학생들이 잇따라 귀국하면서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98년 예술의전당 등 서울에서만 전년보다 10%쯤 많은 5백90여회의 독주회가 열렸다.

하지만 이들 공연의 관객 중 '유료' 는 겨우 10%안팎.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지난해 열린 1백10회의 독주.독창회 중 유료표를 한 장도 못 판 공연이 26건 (23.6%) 이나 됐다.

소비자인 관객을 외면한 '공급자형' 또는 '자족형' 예술은 자생력을 잃게 마련. 이를 반영하는 것이 국.공립 예술단체들의 지출대비 수익률이다.

국립국악원은 2.6%, 국립극장 4.6%, 좀 낫다는 서울예술단이 12.9% 수준이다.

이에 비해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43.9%, 미국의 케네디센터는 47.4%다.

공급자형 예술은 또 왜곡된 협찬문화를 낳는다.

오페라 무대감독 C씨는 "K오페라단 등 일부단체는 '전문 거간꾼' 을 후원회원으로 등록, 협찬금을 따오면 20~30%의 리베이트를 주기도 한다" 고 말했다.

공연계가 공급자형이 된 근본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계파 (系派) 주의를 꼽는다.

비평그룹 21세기 문화광장의 탁계석 대표는 "음악이건 무용이건 한 선생 밑에서 배우게 되면 그것이 인생항로를 결정짓는 '평생 올가미' 가 된다" 며 "계파의 이익을 거스를 때 겪는 불이익 때문에 젊은이들의 독창적 예술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문화상품의 국제경쟁력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크게 성공했던 뮤지컬 '명성황후' 가 좋은 예. 지난해 5억원의 국고와 기업후원금 등 60억원을 들여 미국공연에 나섰지만 6억~7억원대의 적자를 봤다.

교포상대의 소극적 마케팅만 벌여 뉴욕에선 2천8백석 중 50%를 가까스로 채우는 등 고전했다.

미국에서 공연기획가로 일했던 장경욱씨는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 등은 주고객이 미국인일 정도로 국제화에 성공했다" 며 "언어를 극복하는 율동의 개발, 현지 마케팅 전문가의 활용 등 적극적 전략없이 '한국적인 것' 만 내세우는 해외공연은 한계가 있다" 고 충고했다.

예술의전당 문호근 공연예술감독은 "예술을 전문집단의 전유물로 삼던 시대는 지났다" 며 "어차피 예술도 표를 팔아 돈을 벌어야하는 '시장' 에 나와 있다면 대중을 끌어들이는 작품과 마케팅의 개발이 급선무" 라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고종관.정재왈.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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