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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대통령 정보도 수집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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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만큼 싸웠으면 이제 그동안의 전말을 짚어 보면서 가능한 부분부터라도 평가하고 교훈을 얻어내는 마무리 수순이 필요한 때가 됐다.

국회 529호실에서 비롯된 이른바 '안기부 정치사찰' 이야기다.

말이 트집을 낳고 트집이 또 다른 싸움을 불러 정초부터 국민들을 갈피 못잡게 한게 이 싸움의 양상이다.

한나라당은 이른바 2차 문건을 공개하면서 여야 의원의 탈당 가능성과 비리, 외부청탁 내용 등 정치인 개개인의 동향을 파악해 온 사실이 드러난 만큼 안기부의 정치사찰은 명백히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동향보고서는 존안 (存案) 카드 형태로 보관되고, 이를 정치권 통제용 자료로 활용하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이는 안기부법에 금지토록 명시된 정치관여에 해당하므로 정치사찰을 즉각 중지토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안기부와 여권의 주장은 다르다.

정보수집 기능은 안기부의 통상업무로, 수집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이용해 정치현상의 변경을 초래하는 정치공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인에 대한 동향파악이 정치사찰인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셈이다.

사찰이란 원래 그토록 나쁜 말은 아니다.

조사하고 (査) 살피는 (察) 일이다.

그게 자유당때 주민의 사상적 동태를 감시하는 경찰의 한 기능으로, 탈선이 잦아 인상이 지워지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찰' 이 됐건 '정보수집' 이 됐건 나라의 정보수집 기능은 없어서는 안되고, 그 대상에 정치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측면에서는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 기능은 국가의 운영이나 국민보호 차원에서도 부득이한, 말하자면 필요악 (必要惡) 이다.

게다가 우리는 남북이 갈린, 세계 유일의 분단.대치국가다.

때문에 이 일은 안기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어디선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꼭 해야 될 일과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별개 문제다.

악용소지 유무는 별도의 논쟁이 돼야 한다.

미국도 국내정보를 맡고 있는 연방수사국 (FBI)에서 정치인의 동향파악은 정보수집의 필수목록이 돼 있다.

이번 사태로 해서 정보수집 기능 자체가 혹시라도 위축돼서는 안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서 사각지대가 없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개인의 동향에 대해서도 정보수집이 이뤄져 내용이 파일 (file) 로 유지.관리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렇게 작성된 파일은 정권이 바뀌어도 '불태워 없애지' 말고 인계돼야 한다.

그게 국익 (國益) 이다.

물론 수집과정에서의 불법이 용납될 수 없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대상 정치인들은 몹시 불쾌하겠지만 일정지위 이상 공인 (公人) 의 재산공개 의무도 다름아닌 사생활 침해라는 점에 비춰 보면 해답은 나온다.

문제는 안기부의 정치사찰 여부, 다시 말해서 정보수집 기능이 불순한 목적에 이용되느냐의 여부다.

이를 놓고 양측은 첨예하게 다른 입장이지만,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참고로 당초 안기부법에 정치관여 금지조항이 왜 들어갔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과거 정보부.안기부의 정치정보 수집목적은 도덕성이 없는 정권의 정권안보나, 집권연장을 위한 '정당한 정치활동의 규제' 였다.

그래서 정치공작은 물론 선거개입도 서슴지 않았다.

죄없는 정치인을 끌어다 라면을 먹이고 수염도 뽑았다.

이른바 북풍사건도 특정 대통령후보의 낙선을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정치공작이었고, 이는 '정치관여 금지' 이후인 바로 요 얼마전 일이었다.

지금의 안기부는 그같은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대적인 자체수술도 했고, 부처 이름까지 바꾼다고 했다.

나쁜 관행도 비록 완벽은 아닐지 몰라도 개선됐다고 항변한다.

또 "설사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해도, 왕년의 큰 도둑이 새끼절도 용의자에게 그렇게까지 핏대를 올릴 수 있느냐" 는 사회 일각의 눈 부릅뜬 목소리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 쳐도, 정치사찰의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았다면 차제에 해서 될 일과, 해선 안될 일을 확실히 구분하는 기준이 나와줘야 한다.

요컨대 정보수집은 철저히 하되, 정치사찰 논쟁의 여지는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안기부는 프로다워야 한다.

요원들도 드러내놓고 으스대서도 안된다.

소리 없이 감쪽같이 해내야 한다.

529호이건 어디건, 망치로 못 부숴 용접기로 뚫고 들어간다 해도, 첩보단계의 개인 메모일망정 남이 알아낼 수 없어야 한다.

그게 새로 출범하는 국가정보원에 걸맞은 모습이다.

오홍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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