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5대그룹 합의 1년 결산]합의 5개항 진행상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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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영투명성 제고

올해부터 30대 그룹의 결합재무제표 작성이 의무화됨에 따라 부당 내부거래나 분식회계 등 그간 우리 기업의 관행이었던 '장부상의 불투명성' 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결합재무제표는 사실상 지배관계에 있는 모든 그룹 계열사의 매출.부채나 현금흐름 등을 한데 모아 회계장부를 작성하므로 '숫자 조작' 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합재무제표 작성은 역대 정권들이 재벌 개혁을 외칠때마다 들고 나왔지만 재계의 반발에 밀려 번번이 유야무야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현대.삼성 등 주요 그룹들이 이미 재무자료 통합을 위한 자체 시스템을 개발, 시험가동 중이거나 외부 회계법인을 선정해 결합재무제표 작성준비에 한창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 사외이사 - 사외감사 선임이 의무화돼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중요 경영정보를 경영진이 독차지하는 관행을 막고 잘못된 투자나 의사결정에는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정재 기자

◇상호 지급보증 해소

새 정부는 출범 이후 기업구조조정의 핵심과제로 '시장원리에 따른 부실기업 퇴출' 을 내걸었다.

바로 재벌그룹 우량 계열사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통로가 돼 온 상호지급보증과 부당내부거래의 차단을 통해서다.

이 연결고리만 끊는다면 수익도 못내고 제 힘으로 돈을 빌릴 수도 없는 부실기업은 자연히 도태될 것이기 때문. 이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연중 실시하는 한편 지난해초 공정거래법을 개정, 30대 그룹 계열사간에 신규 채무보증을 전면 금지하고 오는 2000년 3월말까지는 기존 채무보증을 모두 해소하도록 했다.

지난해 4월 현재 30대 그룹의 채무보증 총액은 26조9천억원. 공정위는 기업들에 신규 보증을 금하는 것과 동시에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과다.중복 보증을 자진 해소토록 요구, 6개월만에 30대그룹 채무보증 총액을 6조3천억원이나 줄였다.이에따라 자기자본대비 채무보증비율도 39.5%에서 28.7%로 뚝 떨어졌다.

신예리 기자

◇재무구조 개선

정부가 5대 합의안 가운데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재벌의 재무구조 개선이었다.

한국 재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빚이 많으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 (大馬不死)' 였던만큼 재무구조 개선없이는 개혁을 했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초 정부가 올해말까지 대기업의 부채비율을 2백% 이내로 낮추라고 했을 때만 해도 이 목표를 실제 달성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97년말 평균 4백80%에 달했던 부채비율을 2년 안에 절반 이하로 낮추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 재벌들도 버틸 때까지 버텼지만 결국 5대 그룹은 지난해말 주거래은행에 제출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에 올해말까지 부채비율을 2백% 이내로 낮추고 내년말까지는 1백70%대로 끌어내리겠다고 약속했다.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극약처방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5대 그룹의 경우 현재 2백71개인 계열사를 2000년말까지 절반 수준인 1백36개로 줄이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기로 한 것. 앞으로 남은 과제는 재벌들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지 여부를 감시하는 일이다.

정부는 이 역할을 채권은행에 맡긴다는 복안이지만 은행들이 이 일을 얼마나 잘 해낼지는 여전히 미지수여서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경민 기자

◇핵심부문 설정.중소기업 지원

우여곡절과 진통 끝에 '빅딜' 이 하나씩 열매를 맺으면서 5대 그룹을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핵심 주력업종 위주의 그룹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난해 말 삼성과 대우가 자동차와 전자를 맞바꾸기로 한데 이어 올들어 LG가 산고 끝에 반도체를 현대에 넘기기로 함으로써 지난해 10월 정.재계 합의 사항인 7개 업종 (반도체.철도차량.발전설비.석유화학.항공기.선박용엔진.정유) 의 통폐합 작업에 일단 밑그림이 완성됐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 의 고동을 틀면서 지난해 12월 5대 그룹은 3~5개의 핵심업종을 정하고, 부수적 업종의 경우 합병.매각.계열분리 등을 통해 총 2백64개에 이르는 계열사 수를 올 연말까지 절반 가량으로 줄이기로 했다.

빅딜 추이를 예의 주시해온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등 외국 평가기관들도 한국의 투자신인도 상향조정을 검토하는 등 일단 나라 안팎에서 긍정적 평가를 얻는 분위기다.

이처럼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남은 여력으로 중소 협력업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도 바람직한 변화로 꼽힌다.

표재용 기자

◇지배주주.경영진 책임강화

정몽구 (鄭夢九) 인천제철 대표이사, 이건희 (李健熙) 삼성전자 대표이사,

김우중 (金宇中) 대우자동차 대표이사, 구본무 (具本茂) LG전자 대표이사 등 5대 그룹 오너들이 차례로 계열사 대표이사 직함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지난해다.

이에 따라 비서실 또는 기획조정실이란 별도조직을 통해 계열사들을 사실상 통제했던 대기업 오너들은 명실상부 경영일선에 서서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까지 지게 됐다.

상당수 상장사를 계열사로 둔 5대 그룹 오너와 임원들에겐 부실경영에 대한 소액주주의 대표소송 요건이 대폭 완화 (지분 1%→0. 01%) 되고 기관투자가 의결권이 부활된 것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다.

오너의 '결심' 보다 이사회 합의를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풍토가 바뀌어가는 것도 새로운 기류변화다.

지난해 4월부터 6백여개 상장회사의 사외 (社外) 이사.감사 선임을 의무화

해 외부감시 기능을 강화한 것도 경영전략 수립 과정에서 오너의 지나친 입김을 차단하는 장치로 작용할 전망이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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