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현충원은 DJ 생각 … 이 여사가 노제 양보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24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내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인부들이 봉분에 떼를 입히고 있다. [연합뉴스]

6일 동안 치러진 김대중(DJ) 전 대통령 국장은 떠들썩하지는 않았지만 장엄하게 치러졌다는 얘기가 많다. 정부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75만여 명에 달했다.

동교동 비서팀의 한 인사는 “서울 현충원 안장은 김 전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래전 현충원에 들른 김 전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우리도 죽으면 여기에 묻히는 게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DJ의 생각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박지원 의원 등 측근·비서들도 이심전심으로 읽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병상에 누운 DJ의 생환을 기도하는 분위기여서 장례 준비는 쉽지 않았다.

행동에 옮긴 건 박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서거 3일 전(15일) 윤철구·최경환 비서관 등 동교동 비서진을 불러모아 은밀한 준비를 지시했다. 국장, 서울 현충원 안장, 국회 영결식 등의 입장을 정한 건 이때였다고 한다. 박 의원은 DJ 차남 김홍업 전 의원과 권 전 고문 등을 만나 이 같은 계획을 설명했다.

장례의 격은 서거(18일) 이튿날 오후에야 정해졌다. 국장이냐, 국민장이냐를 놓고 정부와 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했다. DJ가 서거(오후 1시43분)한 지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청와대를 찾은 박 의원은 맹형규 정무수석과 만난 자리에서 국장 등 세 가지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청와대 측은 국회 영결식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가지 요구에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다만 공휴일 지정 등 정부가 난색을 표한 부분들을 DJ측이 “엄숙하고 검소하게 치르라”는 이 여사의 당부에 따라 양보하면서 국장 문제는 고비를 넘겼다. 마지막 걸림돌은 민주당이 계획한 서울광장의 문화제였다. 정부가 18일 밤까지도 난색을 표하자 박 의원은 “국장을 반납하겠다”고 버텨 정부의 양보를 받아냈다.

◆이 여사, 김 위원장에게 감사 편지= 이희호 여사는 지난 21일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 북한 조문단에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앞으로 보내는 감사 편지를 전달했다. 박지원 의원을 통해 조문단 만찬 자리에서 전달된 이 편지에 대해 박 의원은 “김 위원장의 조문단 파견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았다”면서 “A4 용지 한 장에 이 여사가 큰 글씨로 직접 쓰신 것”이라고 밝혔다.

임장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