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Y.E. Yang에 열광한 미국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골프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지난 16일 전까지만 해도 K.J. Choi는 알았어도 Y.E. Yang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한국사람이란 것조차 자신이 없었으니, 그의 고향이 제주도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나는 ‘양용은’에 대한 모든 것을 그날 미 공중파 TV와 골프전문 케이블 채널의 PGA 투어 챔피언십 중계를 보고서야 알았다. 아마 절대다수 미국인들의 상황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골프 전문가들의 해설이 너무나 흥미로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양용은은 전날까지의 성적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에 이어 2위였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언급은 적었고, 가끔씩 나온 말들도 “37살 늦깎이 한국인 골퍼가 제법 한다”는 투였다. 양용은이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줄곧 우즈를 따라 붙자 해설자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우 강한 선수”라고 격려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4번 홀에서의 멋진 이글로 무명의 양용은이 우즈를 앞서자 “Yang은 한국의 남쪽 섬 제주도 출신이다. 제주도는 매우 따뜻하고 바람이 많이 분다. 마침 오늘 날씨가 매우 덥고 바람이 많이 분다”는 의미 있는(?) 분석이 나왔다.

맞는 말일 수 있겠지만 내 귀엔 우즈보다 양용은에게 특별히 유리한 환경이 전개되고 있고, 그래서 그가 선전하고 있는 거라는 질투 어린 목소리로 들렸다. 그러나 양용은의 놀라운 플레이가 거듭되면서 해설자들도 그의 실력에 손을 들고 말았다. 양용은이 한 타를 칠 때마다 그에 대한 찬사가 ‘very good’ ‘outstanding’ ‘great’ ‘wonderful’로 격상됐다.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최경주를 빼닮았다”고 하다가 “매우 차분하고 편안하게 플레이한다”고도 하더니, 나중에는 “그의 플레이는 아름답고, 존경할 만했다”고 마무리 지었다.

행복한 마음으로 TV를 끄면서 어느 분야에서든 한국인으로 1등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 기업, 조직들은 모두 이 같은 상황을 거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관심과 의구심, 질투와 시기, 주목과 인정, 존경과 숭배의 과정을 묵묵히 실력으로 버텨낸 자만이 한 번쯤은 양용은처럼 골프백을 머리 위로 높이 올려 흔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

미국의 수많은 골프 팬들에게 따뜻하고 바람 많은 한국의 제주도를 알게 해준 양용은이 너무나 고맙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