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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우리멋]포항시 구룡포 장기곶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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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이겨나왔던 한민족. 우리산천 구석구석에는 조상들의 숨결과 애환, 삶의 지혜가 서린 곳이 즐비하다. 새 천년을 한해앞둔 기묘년 새해, 우리는 옛 것을 오늘에 되살려 밝은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새해를 맞아 아름답고 정겨운 산하찾기 시리즈 '우리 땅 우리 멋' 을 매주 수요일 연재, 조상들의 멋과 풍류, 삶의 지혜와 함께 내고장의 숨은 내력과 명물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을 떠난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곳, 구룡포 (경북포항시) .울릉도와 독도를 제외하고 해와 달이 가장 먼저 뜬다. 동해의 심연속에서 붉은 기둥이 불끈 솟아오르면 수평선 위로 짙게 깔린 구름도 붉게 물든다.

새벽 출어에 나선 배들이 부산하게 움직일 때 쯤이면 새벽을 뚫고 달려온 바닷바람이 어둠을 밀어낸다. 그리고 갈매기 날아가는 쪽빛 바다에는 겨울의 진한 서정이 묻어난다.

한반도 남동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장기곶. 영일만을 끼고 동해를 마주한 이곳은 호랑이의 꼬리부분에 해당한다. 고산자 김정호 (?~1864) 의 땀과 조선조말 개화파의 우두머리인 고균 김옥균 (1851~1894) 의 비극이 서려있으며 국내 두번째로 세워진 장기곶등대는 관광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조선 명종때 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산수비경' 에서 '장기곶은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 고 말했고 육당 최남선은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그중 백두산은 호랑이의 코, 장기곶은 꼬리에 해당한다" 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제는 한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반도를 연약한 토끼에 비유해 장기곶을 토끼꼬리라고 불렀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동해의 장기곶과 죽변곶 (경북울진군)가운데 어느 곳이 더 튀어나왔는지 측정하려고 두 곳을 일곱번이나 오갔다.

그런가 하면 조선조말 수구파였던 홍종우 (1854~?)에게 암살당한 김옥균의 왼팔이 버려진 역사의 현장이다. 장기곶에는 영일만의 아름다운 해변과 잘 어울리는 등대가 있다.

"늘씬하게 뻗어올라간 모습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 연간 30만명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고 권순만 장기곶항로표지관리소장은 이야기한다. 장기곶등대 (지방문화재 건조물 제39호) 의 역사는 20세기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가 조선을 병점하기 위해 혈안이 됐던 1901년. 장기곶 앞바다에 동경대 해양실습선이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연안으로 다가오다 암초에 부딪쳐 침몰되면서 30여명의 학생이 죽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인이 설계를 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을 맡아 1903년 12월 팔미도등대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번째로 장기곶등대의 불을 밝히게 됐다.

장기곶등대에는 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이 있어 사라져 가는 각종 항로기기를 영구보존.전시해 놓았으나 제2전시관 건립공사로 인해 올 연말까지 휴관중이다.

포항에서 구룡포로 이어지는 국도 31호선을 따라 승용차를 달리면 약전삼거리에 닿는다. 약전~구룡포~장기곶등대~입암~약전까지의 일주도로는 총 거리 약 40여㎞로 쪽빛물결 출렁이는 겨울바다의 정취를 한껏 즐길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

장기곶등대에서 약전까지 영일만을 끼고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파도와 바다위에 떠있는 철새떼, 포항제철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항 =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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