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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비리의 온상 ‘주베이징 사무소’들의 앞날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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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중국의 거의 모든 지방 정부와 기업 들은 베이징에 별도의 연락사무소를 두고 있다. 베이징 중앙정부의 동태를 살피고 중앙과 관련된 업무를 수월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최근엔 상팡(上訪)으로 불리는 상경 민원인들을 미리 파악해 돌려보내는 것도 주업무다. 이 베이징 사무소가 온갖 접대의 중심역을 하면서 비리의 온상으로 매도되고 있다. 지난달 대공보(大公報)는 ‘주징판(駐京辦, 베이징 사무소의 중국명칭)’의 온갖 폐단을 지적하면서 해결책으로 ‘작은 정부, 큰 사회’를 제시하는 기사를 게재해 일견 정치개혁을 주장함으로써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재 국무원과 업무 협조를 하는 부성급(副省級) 이상의 기구가 설치한 주베이징 사무소는 모두 52곳이다. 각 시급의 주베이징 연락처는 520곳, 현급 및 기업의 주 베이징 기구는 약 5000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각 향, 진, 각종 협회들의 베이징 사무소들을 모두 합하면 한 해에 약 백억 위안(1조8000억원)을 쓰고 있다. 물론 그 열 배인 18조원을 쓴다는 설도 있다.

무수한 베이징 사무소들의 초기 건립 취지는 좋았다. 당중앙 및 국무원과의 연락을 강화하고, 각종 정책 정보를 수집하고, 베이징에 올라온 직원들을 접대하고, 중앙의 자금과 물자를 쟁취하며, 중앙에서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따내고, 전국 내지는 전세계 투자 자금을 확보하는 것 등등이 설립 목적이다. 최근에는 중요한 정치적 임무가 추가됐다. “본지 민원인을 설득해 돌려보냄으로써 수도의 안정을 지키는 것”도 베이징 사무소들의 새로운 임무가 됐다.

하지만 실제로 베이징 사무소들은 자신의 역할 수행보다 추악하고, 나쁜 행위를 자행해 전체적으로 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뿐더러 이익보다 폐단이 많은 존재로 전락했다.

◇베이징 사무소의 폐단들

▶공무원 기풍 악화
조금이라고 어렵거나 사람에 의한 심사와 비준이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데 공정하고 공개적으로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현재 중국에 전혀 없다. 믿을만한 연줄과 사다리를 통해 지름길을 찾아 처리하는 것이 일상 다반사다. 이런 중국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주역이 바로 베이징사무소다. 그들의 최우선 임무는 ‘관시(關係)’ 맺기다. 중앙 각 요소 요소의 중요 인물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훗날 일처리가 순조롭게 되도록 배경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주업무다. 이에 각 베이징 사무소들은 경쟁적으로 허세를 부리고 사치 분위기 조성에 앞장 선다. 그들은 다투어 5성급 호텔을 짓고, 초호화풍의 프레지던트 룸을 만든다. 요인들을 모셔 함께 마작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목욕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사다. 음주가무 능통은 베이징 사무소 요원들의 기본 소양이다.

▶경제질서 혼란
각지역 베이징 사무소는 지방 특색의 호텔, 식당을 경영할 뿐만 아니라 상업 및 무역, 부동산등을 겸영한다. 전형적인 ‘관상(官商)’인 셈이다. 이들이 적자를 내면 모두 지방 정부가 전부 떠맡아 쉽게 망하지 않는다. 예외도 있다. 최근까지 산둥(山東)성 웨이팡(濰坊)시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전국 11곳의 사무소를 두고 있었다. 2008년 말까지 누적된 적자가 2000여만 위안(36억 여원)에 달했다. 웨이팡 시정부는 이에 2009년 초 사무소를 모두 폐지한 바 있다. 각 지방정부는 베이징 사무소가 이익을 내면 이를 모두 지방정부의 뒷주머니로 챙겼다. 이렇게 손짚고 헤엄치듯이 민간과 경쟁하는 것은 시장 경제의 공평 경쟁 원칙에 위배된다.

▶부패 온상
‘포부전진(跑部錢進)’. 베이징 사무소의 연줄을 통해 관련 부서에 로비하고 돈을 댄다는 중국의 신조어다. 바로 이 ‘포부전진’이 베이징 사무소의 본질이자 특징이다. ‘손님을 접대하고 선물을 보내는 것’. 이 두 가지 업무는 오랜 세월 전해져 온 업무처리함에 있어 불변의 특효약이다. 어떻게 접대하고 어떤 선물을 보내는 가에 대해서는 제각각의 노하우가 있다. 현금, 예금통장, 결혼자금, 부의금, 골동품, 명화, 고급차, 호화주택 등등 여기에 쓰이는 수단은 모두 분명 뇌물이다. 이에 ‘베이징 사무소 정돈’은 이미 중앙기율위원회와 감찰부의 2006년 4대 업무 목표 중 하나가 된 바 있다.

◇해결책이 ‘작은 정부, 큰 사회’라지만
‘주징판(駐京辦, 베이징 사무소)’의 별칭은 ‘주징판(蛀京辦, 베이징을 좀먹는 사무실이란 뜻)’이다. 중국의 암세포인 셈이다. 하지만 폐단의 근원은 베이징 사무소 자체가 아니다. 바로 ‘큰 정부’, ‘강한 정부’, ‘과도하게 중앙 집권적인 정부’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는 계획경제의 속성이다. 베이징 사무소 흥성의 근본원인은 각 부와 위원회의 자원 배분 권력이 너무 커서다.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비록 베이징 사무소를 없앤다 해도 다른 방법을 찾아 로비하고 돈을 댈 것이다. 베이징 사무소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고 폐단은 더 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작은 정부, 큰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무슨일이든 모두 참견하고 자기가 해결할 수 없다. 권한을 줄여야 한다. 정부의 권한이 크면 클 수록 로비가 심해진다. 정부는 재정지출 관리, 국방, 공안, 교육, 의료, 사회보장 등 사회의 공공재를 제공하면 된다. 생산과 경영 활동은 사회조직과 시장경제질서에 맞춰 민간이 맡으면 된다. 이렇게 된다면 지방정부는 정치업적 프로젝트, GDP 향상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징사무소의 폐단이라는 지극히 중국적 현상의 본질은 ‘큰 정부 작은 정부’ 논쟁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 생각이다. 이는 ‘큰 정부 작은 정부’ 논쟁이라기 보다는 ‘중앙-지방’ 관계, 즉 수 천년을 이어져 온 ‘봉건(封建)-군현(郡縣) 논쟁’의 최신판으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과거 공천하(公天下)를 내세운 사대부들과 지방 세력들은 황제에 맞서 봉건 회귀를 내세웠다. 즉, 이번에 대공보에서 주장한 중앙 정부 권한의 축소라는 ‘큰 사회’ 논리는 이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만기총람의 천자인 황제는 자신이 모든 권한을 가져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권력을 나눈다는 것은 바로 제국의 분열을 의미했다. 통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중앙이 통제하는 군현제가 필요했다. 현대판 황제인 공산당도 이 논리를 신봉한다. 게다가 현재의 중국 공산당은 과학기술의 발달 덕으로 전통시대 어느 황제도 갖지 못했던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베이징 사무소의 폐단은 공산당의 대증적인 각종 처방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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