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 안장식 … 하의도 생가 흙도 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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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는 남편의 관 위에 하얀 카네이션 한 송이와 흙 한 줌을 뿌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난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 터에서 가져온 흙이다. 흙을 한 삽씩 떠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의식은 김홍일 전 의원 등 가족과 전직 비서들, 김대중 정부·민주당 관계자 등으로 이어졌다. 21발의 조총이 울려 퍼지고 참석자들의 묵념으로 6일간의 국장은 마무리됐다.

앞서 운구행렬은 오후 4시50분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도착했다. 묘역 입구에서 묘소까지 봉송 의식은 육·해·공군 의장대가 맡았다. 대형 태극기로 감싸인 관은 11명 의장대의 손에 맡겨졌다. 며느리들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린 이 여사는 남편 뒤를 따라 걷는 내내 손으로 입가를 감싼 채 흐느꼈다.

안장식은 참석자들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경례로 시작됐다. 이어진 종교의식은 천주교·기독교·불교·원불교 순으로 진행됐다. 함세웅 신부와 세민 스님(조계사 주지), 이해동 목사, 이선종 원불교 서울교구장이 차례로 집전했다.

이 목사는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를 금하는 ‘긴급조치 9호’에 항거했던 3·1 민주구국선언 사건(1976년)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80년) 등으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투옥됐던 민주화 운동의 동지였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창립자인 함 신부 역시 76년 함께 투옥되는 등 인연이 깊다.

이 목사는 기도에서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님 가르침도 거의 완벽하게 실천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정적들을 모두 용서했다”며 “정말 훌륭한 예수님의 제자였고 하느님의 참된 아들이었다”고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함 신부는 “이제는 유언이 된 김 전 대통령의 일기, 6·15 공동선언을 마음에 간직하며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기도했다.

김 전 대통령이 누운 향나무 관은 가로 16m, 세로 16.5m의 땅 속에 묻혔다. 하관은 지관이 윤도(輪圖·24방위가 표시된 풍수용 나침반)를 이용해 방향을 잡는 등 조심스러운 손길로 10여 분간 계속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세 번째 국가원수가 됐다. 그의 묘역은 두 사람의 묘역 사이에 있다. 규모는 총 264㎡로 박 전 대통령(3600㎡), 이 전 대통령(1600㎡)의 것보다 작다.

◆“역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시신과 함께 땅에 묻히는 지석(誌石)의 내용도 공개됐다. 지석엔 김 전 대통령의 이름과 호인 후광(後廣), 출생일과 부모 등 기본적인 내용 외에 성장 과정과 정치 역정 등 일대기가 요약돼 담겼다.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치와 부산 정치파동을 현지에서 겪으며 정치에 뜻을 두게 됐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한국 정보부에 의해 납치당해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 세력에 잡혀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미국 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구명 운동으로 감형돼 다시 망명길에 올랐다” “1997년 다시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역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 밖에 62년 이 여사와의 결혼, 세 아들과 손자·손녀들의 이름이 들어 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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