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외환위기는 내탓'경제백서통해 공식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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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잘못된 환율정책과 정부 당국자들의 비밀주의가 외환위기를 불렀다' . 재정경제부는 지난해 12월 31일 발간한 '97 경제백서' 에서 97년 말의 외환위기는 '내탓이었다' 고 밝혔다.

매년 발간되는 경제백서는 정부가 대외적으로 지난해의 경제정책 전반을 설명하고 향후의 방향을 제시하는 공식책자. 따라서 97년 하반기에서 올해 상반기까지를 다루는 이번의 백서가 외환위기의 원인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심 껄끄러웠던 재경부는 일단 한국개발연구원 (KDI) 연구위원들에게 이 부분의 집필을 떠넘겼다. 그러고도 여러번 내용을 수정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다음은 백서의 주요 내용.

◇정책 실패가 위기 불러 = 자본시장을 개방하면서 환율정책을 통화정책과 분리해 운용하는 등 외부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쟁력 10% 강화운동' 이라는 미명하에 환율을 인위적으로 절상시킨 정책이 외환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정책당국자들이 각종 금융 정보를 철저히 비공개로 묶었던 것도 큰 과오였다.

국내경제에 불리한 정보는 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의 결핍' 을 더 싫어하는 시장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처사다.

◇위기예고를 무시 = 96년 하반기 이후 반도체 등 주요 품목의 수출가격이 급락했다. 그 결과 97년엔 이미 연간 경상GDP가 5% (20조원) 나 줄었다.

그러나 지표상으로는 6%성장으로 나왔다. 실질경제성장률은 물량기준이기 때문이다. 가격 하락을 감안하면 사실은 0% 안팎이다. 결국 거시지표를 해석하는데 커다란 오류가 있었던 셈이다.

또 기업들이 '수익성 악화' 라는 질병을 '구조조정' 이 아닌 차입으로 미봉하려 해 지난해까지 고통을 확대.이연시킨 결과를 낳았다.

◇정치논리의 문제 = 대표적 부실기업인 기아차를 '국민기업' 이라며 보호했던 여론과 정치논리에 경제정책 당국자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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