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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랑이 남긴 선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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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좌파의 힘이 비교적 셌던 프랑스지만 ‘메이저리그’는 언제나 우파만의 무대였다. 대통령과 총리, 파리 시장 등 최고의 자리는 한 번도 내주질 않았다. 그런데 81년, 그 당연해 보이던 법칙이 깨졌다. 그해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 미테랑은 공산당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프랑스를 둘로 나누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힘센 자와 힘없는 자의 사회로였다. 그러고는 한쪽에 매달리며 나머지 절반은 포기했다. 물론 못 가진 자, 힘없는 자 쪽이었다.

그는 1차 투표에서 우파의 지스카르 데스탱에게 졌지만 좌우파 후보 둘만의 대결로 좁혀진 결선에서는 이겼다. 그르노블 정치대학 피에르 브레숑 교수는 “미테랑은 노동자·빈민 등을 파고들며 선거를 좌우 대결로 몰아가 이길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메이저에 대항한 마이너 전략의 승리였다. 좌파의 환호 이상으로 우파의 충격은 컸다. 우파는 “미테랑이 프랑스를 두 토막 내고 집권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후 미테랑은 14년 재임 기간 동안 개혁에 대한 박수도 받았지만 사회를 갈라 놓은 반쪽 대통령이라는 비판도 줄곧 이어졌다. 미테랑이 전략적으로 프랑스 사회의 반쪽을 이용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실은 좌파의 집권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우파의 자존심도 한몫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진 95년 미테랑은 오랜 라이벌이자 앙숙이었던 우파의 자크 시라크에게 엘리제 궁을 넘겨줬고 8개월 뒤 세상을 떴다. 주목할 만한 건 그즈음부터 감정싸움이 수그러들었다는 점이다. 최근 취재차 만난 한 젊은 정치인은 “미테랑이 죽은 뒤 국민 사이의 좌우 감정싸움이 잦아들었는데 미테랑을 그제라도 큰 정치인으로 인정한 우파의 더 큰 정치인들 덕분”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미테랑의 장례식이 열린 96년 1월의 노트르담 성당이 떠올랐다. 사회당의 상징인 붉은색·흰색 장미를 손에 든 끝없는 추모의 물결, 그리고 그 속에서 장미를 들고 진정 애도하던 우파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외국인인 내게도 오래도록 인상적인 그 장면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어땠을까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내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치러진다. 14년 전 미테랑이 그랬던 것처럼 김 전 대통령이 좌우 대립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우리 정치판에 금도(襟度)를 남기고 떠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큰 정치인으로 인정하려는 우파의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