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북정책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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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리아 타운에서 '종로약국' 간판을 본 어느 할아버지가 물었다.

"여기서 종로2가는 어디로 가나?" 금강산 관광길에 오른 어느 할머니가 물었다. "여기서 평양을 다녀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답은 물론 "가실 수 없습니다" 였다.

햇볕정책이 천명되고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자 머잖아 남북간에 화해의 물꼬라도 트일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는 혹시 코리아 타운의 그 할아버지나 금강산의 그 할머니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 정부 출범 이후 강성대국 (强盛大國) 을 외치는 북한은 동해.서해.남해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무장간첩선을 침투시키고 있다.

마치 따스한 '햇볕' 이 도발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같은 형국이다.

북한을 포용해 남북간에 교류를 증대하고 결과적으로 개혁.개방을 끌어내자는데 반대할 생각은 없다.

TV가 전하는 금강산 관광을 보면서 감격해하지 않을 국민도 없다.

또한 과거 군사독재정부와는 달리 '국민의 정부' 가 대북 (對北) 정책에 유연성을 유지하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며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의 대북정책에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소지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한국보다도 안보여건이 훨씬 더 유리한 서방선진국들이 국가안보를 위해 엄청난 예산을 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튼튼한 안보는 대북정책의 기조가 돼야 하며 이런 전제와 틀 안에서 정책의 융통성이 발휘돼야 할 것이다.

요즈음 햇볕정책이 비판의 도마위에 오른 것은 바로 이 점에서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북정책의 원칙은 새롭게 조정돼야 마땅하다.

첫째, 정부는 햇볕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지만 이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굳이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무장잠수정 침투 도발이 있을 때마다 눈감아 줘야 한다.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과 물리적 압력을 구사하는 대외정책을 고수하는 한 우리의 포용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우리가 포용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어섰다.

정부는 잠수정 침투 등 도발 사건들이 일어나면 북한의 사과와 무력도발 중지를 요구했지만 햇볕정책만은 마치 신주 모시듯 하고 있다.

햇볕정책이 남한의 국가이익을 위한 정책인지, 북한에 도움을 주자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우리 정부의 북한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지 못하다.

일례로 천용택 (千容宅) 국방장관 해임논란만 해도 그렇다.

정정 (政情) 이 불안한 남미의 '바나나 공화국' 처럼 자고 일어나면 장관이 바뀌는 행정의 불안을 우리는 원치 않지만 국가안보와 관련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 북한에 우리의 결의를 분명히 전달하고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이것은 불안에 빠진 국민들에 대한 최소의 예의이기도 하다.

둘째, 미국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햇볕정책은 대북문제에 있어 미국과의 공조체제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정계.관계.학계.재계를 망라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비판세력은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얻을 때까지 북한에 대한 모든 원조와 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미국.일본.한국 3국의 동북아 미사일 방위체제의 가동도 주장하고 있다.

셋째, 대북정책은 형평성을 존중해야 한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외교와 통상의 '퀴드 프로 쿼 (quid pro quo)' 기본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꽃제비' 현상마저 만연한 굶주린 북한에 물질적인 대가를 요구할 수는 없지만 금창리 핵의혹 검증, 도발중지 약속, 이산가족 상봉 등 무형보상이라도 받아내야 한다.

넷째, 국민적 합의에 토대해야 한다.

사회 전반이 상식적으로 널리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도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결정 과정의 공개성과 투명성이 요구된다.

모든 대북정책이 국가기밀사항이 될 수는 없다.

대북정책의 많은 부분은 경제적.비경제적 측면들을 종합한 손익비용 계산이 국민들에게 선명하게 제시돼 논의를 거쳐야 한다.

1971년 11월 인디라 간디 전인도총리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행한 연설의 한 구절은 국가안보에 관한 원칙으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국민들이 국가안보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떤 정부나 어떤 국가수반도 오래 가지 못한다. " 우리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지정학적 특수성에 비추어 정부와 국가수반의 운명이 이 나라, 이 국민의 운명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안영섭 명지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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