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모양 정류장·정자 … ‘달이 머무는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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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월하리 마을회관 앞에 짓고 있는 정자. 정자 옆 철탑에는 달을 걸었다.

한반도 분단의 현장을 보여주는 철원 노동당사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철원군 철원읍 월하리. 80여 가구, 190여명의 주민이 사는 농촌 마을로 집 상당수가 낡았다. 이 마을에 최근 변화가 생겼다. ‘달이 머무는 마을’로 가꾸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류장을 새롭게 꾸미고, 벽화를 그리며, 마을 공동체인 정자를 짓는 등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월하리를 ‘달도 머물고 싶은 마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시작된 작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09 마을미술프로젝트-길섶미술로 꾸미기 사업’의 하나로 기획됐다. 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이 철원지역의 예술가와 함께 공모해 선정됐다. 작업에는 철원지역 작가 5명과 일상예술창작센터, 티팟이 참여했다.

마을 입구 정류장에는 옛 것 대신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든 하얀 달 모양의 버스정류장을 세웠다. 또 다른 입구에는 솟대가 있는 20여m의 철제 펜스를 설치했다.

달 모양으로 새롭게 꾸민 버스정류장.

두 입구 사이 마을 길을 따라 다양한 형태와 모양의 벽화가 그려졌다. 작가들은 철원의 자연을 가져와 그림을 그렸다. 주민 집과 화장실 벽을 비롯해 녹슨 기름통 등에 철원지역 주민의 정서를 반영한 ‘철길’, ‘두루미’. ‘참새’, ‘소를 타고 노는 사람’ 등 크고 작은 벽화를 새겼다. 철원의 풍광을 담은 타일 벽화도 설치했다. 오래 된 방송철탑 위에는 달을 걸었다.

그렇다고 이 작업이 작가들만의 일은 아니다. 문패와 외등 갓, 우체통을 만드는 일에 주민이 참여했다. 할머니가 쓴 글씨를 동판으로 만든 문패, 손주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 비둘기 두 마리를 넣으라는 마을 이장 김두한씨의 의견을 반영한 문패, 자신이 회갑 때 입었던 한복으로 만든 김옥순(66)씨의 외등 갓은 작가와 주민의 공동 작업 결과물이다. 일부 작가의 벽화에는 마을 어린이 솜씨도 곁들였으며, 철제 펜스에도 주민이 만든 타일벽화를 걸 계획이다. 주민이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참여한 것이다. 집 주위를 야생화 등으로 꾸민 강순자(59)씨는 “33년 동안 살아 온 집을 더 아름답게 가꾼다는 생각으로 우체통과 외등 갓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다”고 말했다. 담장이 없는 마을이라 집집마다 건 문패와 우체통 등은 개인작품이자 공공미술품이 됐다.

작업팀은 50년 동안 자리를 지킨 최옥순(78)씨의 구멍가게 ‘월하상회’의 간판을 나무로 만들어 달았다. 또 50년 월하상회의 역사와 최씨의 인생사를 수(繡)놓는 작업도 하고 있다. 한국서각협회 강원도지회장으로 동송읍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전부경(51)씨는 “이웃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라 지역 예술인들이 기꺼이 동참해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을 주관하고 있는 지역을 위한 미술그룹은 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2주마다 진행상황을 알리는 간단한 소식지를 발행하고, 할머니를 위한 노래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작업은 31일 마을잔치로 마칠 계획이다.

글 ·사진=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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