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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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두 행상

밤 이슥토록 승희에게 구완을 받았지만, 이튿날 아침에 본 철규의 얼굴 곳곳에는 피멍이 뚜렷하게 자리잡았다.

다행히 옆구리는 결리지 않아 점촌장까지 동행할 만하였다.

세수를 하고 난 철규의 면상을 힐끗하던 변씨가 이죽거렸다.

한선생 마빡에 초겨울 진달래가 만발하였구만. 진달래는 여천의 영취산이나 마산의 무학산이라 했습니다.

진달래는 피어도 구변은 여전하구만. 모두 선배님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

아침 8시. 변씨와 승희는 남고 철규와 태호가 차에 올랐다.

두 사람만 점촌장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었다.

안동에서 점촌까지는 불과 한 시간 거리로 좁혀져 있었다.

예천까지만 나가면,점촌까지는 요사이 새로 확장된 4차선 도로가 고래 뱃속처럼 훤하게 뚫려 있었다.

옛날에는 역전이었던 장마당은 농산물 공판장 앞쪽과 정류장 근처를 에워싼 공한지로 옮겨져 있었다.

일찍 나선 행상들이 좌판을 벌인 지 한 시간이나 되었는데도 매상은 활기를 찾지 못했다.

그제서야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겨울 같은 매서운 추위가 아닌데도 손발이 시린 것은 갑자기 닥친 한속 때문이었다.

성급한 상인들은 여기저기다 모닥불을 피워 두고 있었다.

장바닥에 나와 앉아 장꾼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직접 도마에 손칼국수 가락을 썰어 내 팔고 있는 노파의 시린 손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따뜻한 방안에서 국수가락을 썰어 장마당으로 내오면 한결 편할 것이지만, 손수 국수를 썰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을 때의 시각적 효과를 무시 못하는 세태를 반영한 상술 때문에 허리조차 꼬부라진 노파가 그 고생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었다.

요사이 젊은 여편네들 보통 행내기들이 아입니데이. 삼천원짜리 카세뜨 테푸인가 뭔가는 어너리 (에누리) 안하고 덥석덥석 잘도 집어가지만도 싸 주는 비니루 봉다리 (비닐봉지) 값도 안되는 천원짜리 파 한 단 사는 데는 얼매나 앙칼지게 나대쌓는지 보통 아이라요. 태호가 거든답시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쉬시지 왜 이런 골몰을 겪으십니까 했더니, 손자 놈 때문이라 했다.

노파는 우시장 (牛市場) 이 번창한 이웃 용궁장에서도 국수를 썰어 팔고 있는데, 두 장마당에서 얻은 이익금만 가지면 한 장도막 동안 자신의 용돈과 손자 놈 주전부리거리 뒷돈에는 별 걱정없다는 것이었다.

장마당에 나와서 점심끼니로 사먹는 선술집 소머리국밥 한 그릇으로 그나마 늙바탕의 쇠잔한 근력을 가까스로 부지한다며 노파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12시가 가까워져서야 햇살도 따뜻해졌고, 장꾼들의 수효도 불어났다.

날씨가 싸늘해질 때면, 내륙지방 사람들은 은연중 밥상머리에 따끈하게 구워진 채로 올려지는 노릇노릇한 고등어 자반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간고등어 중에서도 뱃자반이라 해서 금방 잡은 싱싱한 놈을 선창에서 곧장 소금에 절인 것은 별미중에서도 별미로 손꼽았다.

예부터 내륙 산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생선이라면 간고등어밖엔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물 좋은 간고등어는 그래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초겨울부터 산골사람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카세트 테이프를 파는 사람은 이십대에 시쳇말로 뽕짝가수의 무대복장과 버금가는 복색을 갖춰야 하고, 약초를 팔고 있는 상인은 색 바랜 한복에 손때 묻은 중절모가 제격이다.

강아지장사는 몸빼 입은 배불뚝이 오십대 아주머니가 믿음직하고, 농약 치지 않은 청정채소는 노파가 팔아야 하며, 도넛이나 만두를 구워 팔려면 복장이 말쑥한 삼십대 부부가 제격인 셈이다.

팔고 있는 물건도 기후와 지리조건과 맞아떨어져야 구매력을 유지한다.

한겨울에 나온 수박이나 딸기는 시각적으로는 당장 신선하겠지만, 팔아 보면 매기가 떨어져 종잣돈 까먹기 알맞은 상품이다.

그믐밤에 나타나야 할 물귀신이 성급하게 대낮에 나타났다면, 기겁할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