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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세기말 현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살로메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헤로디아의 딸이다.

성서에는 이름이 나와 있지 않지만 그녀는 갈릴리 분봉왕 (영주) 인 계부 (繼父)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아름다운 춤을 추면서 그 대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원했다고 한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프 모로는 이 이야기를 '살로메' 라는 화제 (畵題) 로 화폭에 담았고, 이 작품은 19세기말의 예술에 나타난 인간정신의 퇴폐적 경향, 이른바 '세기말 사상' 을 대표하는 회화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인간을 파멸시키는 여성의 매력, 그리고 성애 (性愛) 와 죽음의 유사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세기말이란지구상의 단순한 시간 구획으로 1백년 단위의 끝을 가리키는데 불과하지만 19세기말 유럽 일대의 사상적.예술적 경향이 고유명사처럼 발전한 데는 까닭이 있다.

19세기 과학의 급속한 발전이 인간사회의 모든 가치관을 혼란 속에 빠뜨리고 인간의 정신을 황폐케 한다는 믿음의 반작용이었던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신은 죽었다' 는 부르짖음도 그같은 상황에 근거한다.

따지고 보면 '세기말 사상' 의 등장은 지구상의 갑작스러운 여러 가지 변화가 요인이었을뿐 그 시기가 19세기 말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오히려 한 세기의 끝과 다음 세기의 시작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종교적 관점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다.

예수의 죽음을 종말 (終末) 로 보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보는 기독교적 관습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데그것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사교 (邪敎) 를 횡행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딱하다.

소위 종말론 혹은 말세론을 내세운 현대 사교의 시발 역시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뉴욕 헤럴드지가 1843년 4월 3일 지구가 불벼락을 맞아 파멸될 것이라는 한 농부의 예언을 '재미삼아' 실었다가 살인.자살.약탈 등 사회가 큰 혼란 속에 빠져 들었고, 그런 대중심리를 이용한 사교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새로운 1백년, 새로운 1천년의 시작을 앞두고 전세계에서는 대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는 등 세기말적 현상이 더욱 번지고 있다 한다 (본지 12월 9일자 9면) .새로운 마음가짐만이 필요할뿐 경천동지 (驚天動地) 할만한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세기말은 말 그대로 한 세기의 끝이지 '말세' 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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