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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정우 칼럼] 중국에 대한 환상 버려라

중앙일보

입력

차라리 잘 됐다. 고구려 문제로 동북아 역사를 뒤틀기 시작한 중국의 행태가 우리 국민 꿈깨는 데 도움이 된다면 감히 그렇게 말하겠다. 더 늦기 전에 중국을 똑바로 인식하라는 경고라고 생각하면 약(藥)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자리잡은 중국은 경제적으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상대다. 안보 문제에서도 중국은 소중하다고들 말한다. 당장 북핵문제 다루는 데 우리와 가장 마음이 맞는 나라가 중국이라 했고 그네들 도움없이는 문제의 원만한 해결이 어렵다고도 했다. 게다가 주변국 가운데 우리 정서에 가장 가까운 상대가 중국이란 게 여론조사 결과였다. 그런 중국이지만 핵문제는 물론 북한의 장래를 논하는데 있어선 절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북한에 미국의 입김이 미치게 되는 것도 반대고 남북한이 한마음 되어 이루는 통일한국 역시 쉽게 찬성할 수 없는 게 중국이다. 그저 북한이 당장 무너져 변방이 소란스러워질 경우를 감당하기 어려우니 평양을 달래가며 상황 악화되는 것만은 막자는 게 베이징의 계산이다.

중국의 탈북자 처리 역시 우리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사실 우리 국민이라고 해서 북한 이탈 주민을 무한정 우리땅에 받아들이는 데 너그러울 수 있을지는 자신 못하겠다.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미국 의회가 관심 보였다 해서 우리 국회의원들이 분노하고 시민단체가 격앙하는 그런 한국이기에 중국은 북한의 반발을 적절히 들먹이며 철저히 자기식 대로 행동한다.

제발 꿈깨라. 북핵문제를 놓고 우리가 중국에 매달리건 아니건 그들의 대북한 자세는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중국의 북핵처리 방식에 그나마 입김 행사하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이미 대미관계의 틀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북핵 문제뿐 아니라 남북한 다루기 모두 상당 부분 중.미관계의 장래를 염두에 두고 이뤄진다. 그래서 북한 핵문제가 중국의 국익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때 비로소 중국은 움직인다. 미국의 강경한 대북자세는 다분히 그런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 역시 점차 대중국 전략이란 큰틀 안에서 그려지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도 그 중 하나다.

와중에 우리는 고구려 역사 왜곡문제를 놓고 남북한 공조를 외치고 있다. 오죽 답답하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여전히 자기식 대로 살겠다는 북한을 상대로 말이다. 고구려 유적지 보존하는 데 돈대고 전문가 지원하겠다는 정부 구상은 언제 해도 좋을 일이니 반대하지 않겠다. 하지만 단군릉을 성역화하고 고구려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외쳐대면서도 정작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한국에 떠넘기려는 듯한 북한과 역사 바로세우기에 민족 공조하겠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순진하다.

또 일본을 향해 '과거는 묻지 않겠다'는 식의 의연함 또한 한국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허세다. 역사인식을 포기한 주제넘은 여유는 역사를 공유한 주변국들의 자의적 역사해석을 부추길 뿐이다. 게다가 나라 한쪽에선 국가와 정부의 정체성을 문제삼고, 다른 한쪽에선 과거사를 정리하겠다고 나서는 판국 아닌가. 그런 마당에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의 장래를 우리가 선도하겠다는 참여정부의 구상은 들을수록 허망하다.

기왕에 국가의 정체성 논쟁, 과거사 처리에 국력 낭비하겠거든 주변 강국 가운데 그나마 누가 미덥고 의지할 상대인가 냉정히 따져보는 작업도 어느 한구석에선 이뤄져야 제대로 된 나라다. 우리 삶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민족의 전략적 공간이 쪼그라드는 뒤켠엔 북한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아 ! 고구려, 분단(分斷)이 원죄로다.

길정우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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