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재계 간담회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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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일 오후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 본관 2층 집현실에서 열린 정.재계 간담회는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지 참석자 모두가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2시간10분동안 진행. 시작부터 참석자들이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전원 집현실 문 앞에 도열해 있다가 입장하는 金대통령과 간단한 악수만 나눈 뒤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金대통령도 악수를 나눌 때 미소조차 짓지 않았고, 한두마디의 인사말도 건네지 않아 단단한 마음의 결심을 갖고 간담회에 임했다는 인상을 풍겼다.

자리에 앉자마자 金대통령은 자료를 펼친 뒤 "이 자리는 이 나라의 경제문제 뿐아니라 국가의 장래에 막중한 영향을 주는 중요한 자리" 라고 강조.

金대통령은 참석자들을 향해 '경제계 지도자' '금융계 지도자' 라는 이례적인 표현을 쓰며 기업의 투명성 제고 등 연초 재벌들과의 합의내용을 상기시킨 뒤 진척상황을 설명.

金대통령은 "회의 직전 보고를 받았는데 증시가 5백선을 넘어 섰고, 5대그룹의 다수 종목이 상한가를 기록했다고 한다" 며 "국민들이 5대그룹의 구조조정을 목마르게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 라고 지적.

그러면서 金대통령은 "5대그룹은 경제성장의 공도 크고 이렇게 된데 대해 책임도 있다.

그런 만큼 나라를 살리는데 앞장서야 한다" 고 역설. 金대통령은 모두 (冒頭) 발언 끝에 "전국민과 세계가 이 자리를 주목하고 있다" 며 " '과연 그러면 그렇지, 이제 정말 희망이 있다' 는 기쁨과 용기를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자리가 돼야 한다" 고 말한 뒤 참석자들의 의견개진을 주문.

이에 김우중 (金宇中) 전경련회장이 간단한 인사말을 한 뒤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계획을 설명했고 이건희 (李健熙) 삼성.정몽헌 (鄭夢憲) 현대.구본무 (具本茂) LG.손길승 (孫吉丞) SK회장이 준비한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이어 은행장들이 구조조정에 임하는 각오를 피력했고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 조세형 (趙世衡) 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이 나서 정치권이 구조조정을 뒷받침하겠다고 약속. 박지원 (朴智元) 대변인은 "분위기는 상당히 진지했으며 재계측도 매우 협조적으로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고 소개.

○…이어 만찬은 다소 딱딱했던 간담회 분위기를 풀기라도 하듯, 참석자들이 8분정도 칵테일 한잔씩을 마신 뒤 진행.

만찬은 건배제의 절차를 생략한 채 시작됐는데, 金대통령은 "인사말은 좀전에 했다" 며 "전경련의 조석래 (趙錫來).박용오 (朴容旿).현재현 (玄在賢) 부회장이 말을 안했으니 한마디씩 하라" 고 주문.

이에 세사람의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金대통령은 "정부가 다 아는 것은 아니니 문제가 있으면 정부와 상의하자" 며 "당장 오늘 회의를 한다고 하니 주가가 상한선까지 오르지 않았느냐. 돈은 여러분이 버는 것이지 정부가 버는 게 아니다" 고 말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만찬은 이전과 달리 1시간5분만인 오후 7시45분에 끝났다.

朴대변인은 "金대통령은 기분이 좋아 시종일관 웃는 표정이었다" 고 전했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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