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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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제6장 두 행상

변씨는 아침나절부터 승희와 함께 풍물거리 초입에 난전자리를 자리잡고 장꾼들에게 전단을 돌리고 있었다.

그날 한씨네들은 모두 세 개의 리어카에 간고등어를 싣고 제각기 장마당에 흩어져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단의 후유증과 가장 먼저 맞닥뜨린 사람은 공교롭게도 장터 초입에 자리잡았던 승희였다.

땟국에 전 건빵바지를 입은 사십대의 두 남자가 그녀의 좌판 앞으로 나타난 시각은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이제 장마당의 분위기가 고조되어서 한참 싸구려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면상들이 험악하게 생기진 않았지만, 사내들의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건빵바지 허리춤을 혁대로 바싹 조여 입은 모양새는 만만찮아 보였다.

그들은 승희의 좌판 한켠에 놓여 있던 전단뭉치를 거칠게 낚아채 집어들었다.

그리고 집어든 전단을 승희의 코 앞에 들이대고 들까불면서 물었다.

"이거 모두 당신이 만든 삐라야?" 마침 두 아낙네를 한꺼번에 맞이하여 잽싸게 간고등어를 도마질하고 있었던 승희는 얼떨결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 순간, 전단뭉치를 길바닥에 패대기치는 소리가 들렸고, 백여 장을 헤아리는 전단 쪽지가 바람에 날려 나비들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어디서 개 같은 기집년이 장마당에 뛰어들어 잘난 체하고 있어? 니 혼자만 먹고 살겠다는 거야? 그런 욕설이 들렸다.

그제서야 승희는 두 사내를 똑 바로 쳐다보았다.

전혀 낯선 사내들이었다.

순간적으로 태호를 미행하고 있다는 앵벌이 패거리들이 아닐까. 그러나 그들의 행색은 틀림없는 난전꾼들이었다.

야, 니가 잘난 척하는 건 좋아. 그러나 잘난 척은 니집 안방에서 서방놈하고 발가벗고 뒹굴 때 하란 말여. 앉아서 오줌 누는 주제에 장바닥까지 뛰어나와서 소문을 내야 속시원하겠어?

그제서야 승희는 그들이 왜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인지 알아챘다.

그러나 대응은 않은 채, 리어카 좌판 아래 흩어진 전단들을 줍기 시작했다.

막보기로 얼르려 들었다간 필경 걸찍한 욕설이나 뒤집어쓸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입생선을 팔고 있는 난전꾼들이라면 쓸개가 뒤집힐 만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옆도 돌아보지 않고 장꾼들의 발치에 흩어진 전단만 거두기로 하였다.

그러나 대꾸는 물론 눈길 한번 돌리지 않은 채 전단만 거두고 있었던 승희의 태도를 오만하게 여긴 사내가 승희의 좌판 도마에 꽂혀 있던 식칼을 뽑아 들었다.

이 씨발년이 사람의 말이 말 같잖아? 상판대기를 획 그어 포를 떠 주어야 정신 차리겠어? 칼을 면상에다 들이대지는 않았지만,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칼부림 이상으로 흉포했다.

승희가 일어선 것은 그때였다.

벌써 주위에는 노점상이며 장꾼들 십여 명이 모여들어 사태의 추이를 흥미있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요즘 같은 장마당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행패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서로 몸싸움이 있어선 안될 남자와 여자, 그리고 대립해서는 안될 같은 노점상끼리의 싸움이기도 했기에 장꾼들은 자못 흥미진진한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승희는 조금의 두려움이나 거리낌을 두지 않고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에 들려 있던 식칼을 빼앗아 꽂혀 있던 도마에 모양있게 꽂으면서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칼은 반드시 제가 있을 자리에 놓여 있어야 흉기가 아닌 거예요. 그 따위 공갈로 질색할 여자였다면 처음부터 장마당에 나서지도 않았겠지요. 그 전단에 당신들 물건 사지 말라는 문구라도 들어 있었나요? 그 전단 어디를 훑어봐도 국산과 수입품의 차이를 적은 것뿐이지 않던가요? 옹골차게 쏘아붙이는 승희의 말에 사내들은 당장 기가 꺾이고 말았다.

안색 한번 변하는 법이 없이 다가와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던 식칼을 빼앗아 드는 승희의 뱃심 두둑한 강단에 주눅들지 않을 사내가 없었다.

어쩌면 사태는 그것으로 싱겁게 수습이 될 듯한 징조까지 보였다.

단단히 벼르고 나타난 두 행상이 조리있게 대응한 승희를 반격할 수 있는 빌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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