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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총풍'당사자 모두 당당하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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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른바 '총풍사건' 의 처리과정에 너무나 잡음이 많다.

이 사건은 진상에 따라 사회에 미치는 충격파의 진폭이 매우 크다.

때문에 검찰조사.관계자 증언.재판 등 진실규명 절차가 어떤 사건보다 신중하고 성숙하게 진행돼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초기부터 청와대.여권이 과도하게 개입했고 고문시비까지 불거져 날로 사회의 혼란이 가중됐었다.

그러던 차에 겨우 여야 총재회담에서 "재판결과를 지켜본다" 는 합의가 이뤄져 분위기가 가라앉는가 싶었다.

그러나 근자에 다시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에 대한 검찰수사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 거래' 설 (說) 이 등장하고 검찰에선 "배후는 이회창" 같은 풍설이 흘러나와 분위기가 다시 흙탕물이 되고 있다.

이런 혼선의 책임은 사건과 연결된 여러 세력과 당사자에게 골고루 있다.

李총재도 예외가 아니다.

"李총재측에 보고서를 건넸다" 는 한성기 (韓成基) 씨의 법정증언이 나온 지 3일이 지나서야 李총재는 "검찰 소환에 떳떳하게 응하겠다" 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韓씨의 진술이 왔다갔다 해서 신빙성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주장은 법정에서 나왔고, 보고서라는 것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나왔다니 검찰로서는 李총재를 조사하는 것이 수사관행에 맞다.

야당 총재에 대한 예우방식은 그 다음 문제다.

판사 출신인 李총재는 이런 맥락을 알 터이니 일단 검찰 조사에 당당히 응하겠다는 입장을 일찍 밝혔어야 옳다.

그의 수행비서가 보고서를 받지 않았을 수도 있고, 받았더라도 그에게 전달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李총재가 받았더라도 그것은 韓씨가 일방적으로 작성해 李총재와는 무관한 물건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李총재가 사건의 배후로서 보고서를 받았을 수도 있다.

만약 그가 사건의 배후가 아니라면 여권과 검찰엔 여러 부담이 돌아갈 것이다.

반대라면 그도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

검찰의 행태도 다분히 비 (非) 사법적이며 정도 (正道)에서 벗어난 것이다.

검찰은 고문시비 진상을 가리는 데는 별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서 李총재와 관련된 무슨 사안이라도 터지면 열심히 보도자료를 내고 있다.

차분한 수사라기보다 마치 대 (對) 야당 전투 같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도 논란이 많은 韓씨의 자필 진술서라는 것만 가지고 李총재 배후설을 흘리는 것도 그러한 예다.

진상은 차분하고 과학적이며 공정한 수사.재판으로 밝혀져야 한다.

그 작업은 이번 재판에서 끝내야 한다.

총풍이 정치성의 기류를 타고 계속 춤을 춘다면 경제회생에도 이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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